(출처-조선일보 2014.10.25 박우희 서울대 명예교수·국제토마스머튼회 한국지부 대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이 얼마 전 4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다.
우선 정구사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사회교리'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그들은 한 달여 전 평화신문에 특집 기사로 실린 '교회는 왜 현실 문제에 소리를
내는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신앙 부정'에서
"일상생활의 판단 기준과 원리는 모두 사회교리에 있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실적 국가 현안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세상을 혼란케 하고 있다.
사실 레오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 이후 열네 번에 걸친 교서(敎書)와 회칙(回勅)은 모두 산업혁명
후 100년 동안의 사회 변혁과 새로운 과제에 대해 넓은 뜻에서 교회의 사회 참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線)을 분명히 긋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선을 분명히 지켰다.
먼저 사회교리는 '노동'과 '가난함'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새로운 사태'와 '노동하는 인간'에서는 노동의 신성함과 노동자의
적정 임금 및 인간다운 생활 보장, 노동조합 결성, 빈민과 약자 구호, 사회 불평등 완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노동자 계급, 투쟁, 혁명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정구사는 공공연히 "예수님은 노동자이셨고
독재에 항거하셨다"면서 계급과 투쟁 의식을 자극한다.
일부 신부는 급기야 4대강 사업, 쌍용차 사태,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세월호특별법,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
연평도 포격 등 현실적 국가 정책 과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세상 만물이 그렇듯 '회색 지대'에 속하는 것이다.
미국 해군 기지인 아나폴리스가 관광 명소가 되고 미국 유수의 교육기관이 되었음을 아는가.
소수 성직자는 사회 불안을 일으킴은 물론 교회 내의 영성(靈性)까지 시들게 하고 있다.
성당에 가면 앞쪽에 '영적 성숙의 해'라 쓰여 있지만 미사 도중에 정치적 발언이 튀어나오고 계급투쟁을 부추기는 언사가
뱉어져서야 어찌 평신도들의 영성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사회교리는 사회 참여의 원리와 방법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교회란 정치적으로보다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기관'이며 '교회는 적(敵)을 제거하기 위하여 한 계급이 다른 계급과 대결
또는 투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대화와 타협의 길을 모색하며' '사회생활의 조직과 정치 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결코 교회 사목자들의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정구사와 정평위 신부들은
'사회보다 정치에' '대화와 타협보다 대결과 투쟁' '단합보다 분열' '평화와 안정보다 불화와 불안'
'사랑과 영성보다 비난과 증오'를 앞세우면서 나라와 사회가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평신도들도 이제 알 건 다 알고 있다.
왜 한국 천주교 일부 사제만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가.
순진함인가, 자격 미달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세속에 물들어 색안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물어보고 싶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서서 사회교리를 다시 읽고 교회의 영성 성숙에 이바지하는 시간을 갖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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