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장하준 칼럼]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

바람아님 2014. 10. 23. 20:34
[출처 ; 중앙일보 2014-10-23일자]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한국 조선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 조선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유례없이 임원진을 30%가량 줄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격세지감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조선국이 되었다고 기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조선산업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물량으로 1등 자리는 이미 몇 년 전에 중국에 내어주었지만, 그래도 고급선 분야에서는 앞서 있다고 자위했는데, 이제는 그런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심해지고 있고, 최근 엔저에 힘입어 일본 업체들마저 ‘회춘’을 하고 있어서 사정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많은 주력산업들이 조선산업과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가속도는 둔화되었어도 계속 매출액이 늘고는 있는 자동차는 조금 사정이 낫지만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텔레비전, 반도체, 석유화학 등 다른 산업들은 매출액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주력 산업들이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이 상대적으로 쉬운 산업들이라는 것이다. 조선산업은 상대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 임금이 더 높은 선진국이 후발국에 대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철강·반도체·석유화학·휴대전화 등은 대규모 설비를 장치하면 단가를 크게 낮추어 승부할 수 있는 산업이라 투자만 적극적으로 한다면 후발국들이 해볼 만한 산업이다. 우리나라도 바로 이런 점들을 이용해 1970~80년대에 현재의 주력산업들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거세지는 중국의 추격이 문제라면 그에 대응해 최대한 가격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중국의 임금이 우리나라의 2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가격경쟁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설사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를 위해 중국 수준으로 임금을 낮춘다면 50년 동안 힘들여 경제발전을 한 의미가 없다.

 그러면 결국 중국과 같은 후발국이 따라오기 힘든 산업에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들이 그런 산업들인가?

 첫째로, 생명공학·대체에너지·나노산업 등 고도의 기술에 기반한 최첨단 산업들이 있다. 물론 중국은 소득수준에 비해 기술력이 높은 나라라 이런 분야에서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전반적인 기술력이 우리나라가 훨씬 높기 때문에 이런 산업들에서는 우리나라가 마음먹고 나서면 당분간 중국이 추격하기 힘들 만큼 간격을 벌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최첨단 산업들에서 성공하려면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계속 단기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언제 이익을 볼지도 모르는 최첨단 산업에 연구개발비를 부어넣기가 힘들다. 따라서 이런 산업들을 개발하려면 단기적인 수익성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국가의 연구개발 투자가 불가결하다. 컴퓨터(국무부), 반도체(해군), 인터넷(국무부), 항공기(공군), 생명공학(보건연구원) 등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첨단산업들이 모두 미 연방정부 및 군부의 막대한 연구비 지원에 힘입어 발전되었다는 것이 그 좋은 증거다.

 둘째로, 후발국의 추격이 어려운 산업들은 기계·부품·소재 산업들이다. 이 산업들은 기술 자체는 최첨단이 아닐지라도 높은 정밀도, 엄격한 품질관리,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후발국이 발전시키기가 힘들고, 우리나라도 아직 이런 산업들이 매우 취약하다. 우리나라가 산유국들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거두면서도 일본과는 구조적인 적자를 내는 것이 바로 이런 산업들이 약해서 이런 물품들을 일본에서 막대한 양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기계·부품·소재 산업은 고도로 특화되어 있고 장인정신이 필요한 산업이라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적합한 업종이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의 가장 큰 약점은 연구개발에 투자를 할 여력이 적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성공하려면 독일의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들과 같은 공공연구소가 필요한 기술연구를 제공하거나, 이탈리아와 같이 동일업종의 중소기업들이 모여 공동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최첨단 산업이나 기계·부품·소재 산업 모두 쉬운 산업들이 아니다. 이미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산업들에 진출해 선진국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쉬운 길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 단계에서 주저앉지 않으려면 과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정신으로 다시 도전해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