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20 김재원 KBS 아나운서)
봄볕이 따스하던 날부터 어머니는 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다녔다.
큰 병원에서 담석증 진단을 받고 곧 수술을 한다고 했다.
늦여름, 가벼운 수술이니 걱정 말라시며 입원했던 어머니는 열흘 후 중환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담석증 수술을 위해 열어 보니 암이었단다. 명백한 오진이었다.
수술과 동시에 암은 번졌고, 멀쩡했던 어머니는 그 후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한방으로 암 치료를 했지만 어머니는 쓸쓸한 초겨울에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열세 살 때였다.
어머니는 생명보험에 가입했었다.
어머니는 생명보험에 가입했었다.
보험사는 엄마가 진료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큰 병원과 보험사를 여러 번 방문했고 그때마다 어린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러던 아버지가 나를 앉혀 놓고 말씀하셨다.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는구나. 진실이 분명해도 사과받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너한테 무척 미안하구나." 아버지의 눈물을 본 나는 아직도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의료사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인이 유명인이기에 파장은 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의료사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인이 유명인이기에 파장은 컸다.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잠잠해진 언론에 유가족이 더 외롭지 않을까 걱정이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진실의 실체는 비참할 것이다.
여전히 주변에서 벌어진 많은 사건 사고가 비참한 진실을 감추고 있다.
물에 빠져도, 불이 나도, 사람이 떨어져 죽어도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실은 파헤칠수록 비참해지기에 우리는 그 진실을 덮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원인은 차치하고라도 누군가 혹여 있었을 작은 실수라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분노와 억울함은
한결 잦아들 것이다.
비참한 진실은 진심 어린 사과로 그 어두운 껍질을 벗길 수 있다.
사과가 없다면 누군가 분명 그 어두운 껍질 속에 평생 갇힐 것이다.
찬바람이 부니 오랜만에 어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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