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사우디 제다시(市) 미화 프로젝트를 맡은 삼환기업에 사우디 내무부가 긴급 요청을 했다.
"메카 순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도로 공사를 끝내달라."
수천 근로자가 낮에 쪽잠 자고 밤에 횃불 밝혀 철야 작업에 매달렸다.
일렁이는 횃불 물결에 파이잘 국왕이 난동이 났느냐고 물었다.
사정을 알고선 "공사를 더 많이 맡기라"고 했다.
삼환은 메카행 8차로 확장 공사를 약속한 40일 안에 끝냈다. '사우디 횃불 신화'다.
▶현대건설은 2년 뒤 9억3000만달러에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다.
10m 깊이 바다를 길이 8㎞, 폭 2㎞로 메워 항구와 기반 시설을 만드는 대역사(大役事)였다.
입찰 보증금 2000만달러가 없어 발을 구르던 회사가 44개월짜리 공사를 3년 만에 해냈다.
대림은 이란에서, 대우·동아는 리비아에서 향수병과 싸우고 모래밥 삼켜가며 기적을 만들었다.
새벽부터 체조와 구호로 하루를 열어 일사불란하게 공기(工期)를 앞당겼다.
중동인들은 '피를 나눈 형제'라며 반겼다. 리비아 원수 카다피는 "오래 머물러 달라"고 했다.
▶중동 진출을 시작한 1973년 우리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오일 쇼크 탓에 원유 사느라 쓰는 돈이 3억달러에서 1년 만에 11억달러로 뛰었다.
'호랑이(달러) 잡으려면 호랑이 굴(중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한 해 많게는 17만 근로자가 오일 달러 넘치는 중동으로 달려갔다.
첫해 2400만달러였던 수주액이 7년 만에 82억달러로 늘어났다.
그때 벌어 온 달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밑거름이 됐다.
김포공항엔 돈 벌러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남편이 피땀 흘려 부쳐준 돈 아내가 탕진했다는 '춤바람' 뉴스엔 온 국민이 분개했다.
▶엊그제 사우디 영문 일간지 '아랍뉴스' 칼럼이 70~80년대 한국 근로자를 돌이켰다.
'최근 큰 공사를 해외에 발주했지만 공기가 늘어지거나 질이 떨어졌다.
70년대 물결처럼 밀려온 1세대 한국 근로자가 더욱 생각난다.'
칼럼은 '한국 근로자들은 가족 먹여 살린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일했다.
세계 첫 한류(韓流)는 우리 왕국에서 시작했다'고 썼다.
▶우리는 까마득한 옛 얘기인 줄 알았더니 사우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았나 보다.
한편 고맙고 한편 자랑스럽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해외 공사 수주액 60%를 중동이 차지한다.
도로·항만에서 원전·플랜트·병원·방위산업으로 분야도 다양해졌다.
중동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이젠 고학력 관리직 일자리도 많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길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