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디플레이션의 늪,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난다

바람아님 2014. 11. 21. 10:45

[출처 ; 중앙일보 2014-11-21일자 사설]

 

물가 하락에 경기 침체가 겹치는 디플레이션은 경제엔 파국적 재앙을 뜻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경제에도 디플레 경고등이 켜졌지만 치유책을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디플레냐 아니냐의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본지가 전문가 20명에게 긴급 설문조사를 했더니 그중 15명이 현재의 상황을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4명)’거나 ‘디플레이션에 빠질 우려(11명)’가 있다고 대답했다. 12명은 한가하게 디플레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당장 정책을 바꾸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플레이션은 실물과 심리 두 곳에서 온다. 선제 대응도 심리·실물 양쪽에서 이뤄져야 한다. 심리를 못 잡으면 아무리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봐야 헛일이다. 디플레는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자기 실현적 예언 ’에 의해 증폭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같이 돈 풀기를 했지만 미국은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한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고용률·물가상승률 목표를 정해놓고 일관되게 인플레 정책을 밀어붙인 반면 일본은 경제 사정에 따라 긴축과 부양을 찔끔찔끔 반복하다 장기 불황을 자초했다.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미적대는 사이 디플레 공포가 일본 국민을 삼켜버렸고, 급기야 상품권을 나눠줘도 이를 돈으로 바꿔 저축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이 디플레 심리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리·통화·재정 무엇이든 동원해 인플레 정책을 쓸 것이란 믿음부터 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 결정자들부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가는 오르는 것’ ‘저물가는 선’이라는 인플레이션 시대의 사고로는 디플레의 재앙을 막아낼 수 없다. 큰 폭의 금리 인하, 한국판 양적완화까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현재 연 2%의 기준금리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고려한 마지노선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디플레 추세로 볼 때 큰 폭의 금리 인하를 통한 인플레는 당분간 한국 경제에 독보다는 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실물은 부동산이 버텨줘야 한다. 우리는 국가 자산의 85%가 부동산이다. 부동산 디플레가 시작되면 백약이 무효다. 인플레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규제부터 모조리 풀어야 한다. 집값 상승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규제들은 디플레를 가속화해 가뜩이나 빚 많은 가계에 더 큰 부담이 된다. 시장은 몇 년째 앵무새처럼 되풀이되는 ‘규제 완화’ 헛구호에 지쳤다. 정부가 아무리 외쳐도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는 안 믿는다”는 부정심리가 팽배하다. 당장 야당의 반대로 막혀 있는 ‘부동산 3법’부터 통과시켜 이런 흐름을 바꿔놓아야 한다. 작은 부작용을 겁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규제를 없애 경쟁력 있는 기업이 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 경제적 대응을 넘어 정치·사회·노동·교육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입법, 유연한 노동시장, 기업 요구에 맞는 교육, 신뢰자본의 회복 등 경제 외적인 개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는 엄청나다. 이런 것들을 망라한 특단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