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26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요새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 얼마 전 친구로부터 받은 기습적인 질문이다.
"이순신 장군!" 같은 식의 대답을 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나는 누군가가 한 명 떠올랐지만, 내 친구는 없다고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남을 과하게 의식하는 한국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남에게 보이는 공적(公的) 자아만을 지나치게 치장하다 보면
안의 내용물은 상대적으로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는 괜찮아 보이던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일평생 이 전용기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그들이 가장 존경했던 대통령이 누군지를 물어보았다.
많은 대통령 중 그들이 꼽은 사람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백악관을 떠났던 리처드 닉슨이었다.
정치인으로서는 흠이 있었지만 닉슨은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다.
탄핵을 받고 고향으로 향한 마지막
에어포스 원에서도 퇴진하는 닉슨이 오히려
직원들의 손을 잡고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닉슨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최근에 있었다.
틴 레이 전 부탄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여
부탄의 행복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국제 포럼이 있었다.
공식 행사에 앞서 30분가량 틴 레이 총리와
담소를 나누는 '임무'가 주어졌었다.
국가 총리를 난생처음 만나며 느낀 긴장감은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졌다.
내가 동안(童顔)이라며 반갑게 손을 잡은 뒤
마치 조카와 대화하듯 행복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권위나 위세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분의 기품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은
대중적 인기나 힘의 크기와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을 하나로 혼동하는 사회에서는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멀리서 볼 때만 괜찮은 사람들로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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