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효자손보단 남편

바람아님 2014. 11. 25. 10:26

(출처-조선일보 2014.11.25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같은 김춘란씨. 

40여년 전 강원도 홍천에서 거시기 두 쪽만 달랑 찬 동갑내기 군인에게 시집가느라 전라도 나주까지 간 촌색시다. 

봄 춘(春)자에 난초 란(蘭)자라! 그 이름으로 만날 수 있는 사내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닐까? 

나무와 꽃에 미친 박태후 선생 만나, 남도 최고의 정원 '죽설원'을 만들어냈다. 

무려 1만2000평 규모. 그 고생, 안 봐도 비디오다. 

펜팔로 교제하다 나주에서 처음 만나 여관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데, 그날로 자빠졌다나 안 자빠졌다나? 

좀 거시기허지라잉!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사진

김행 한국양성평등

교육진흥원 원장

칼럼 관련 일러스트


전남여성단체협의회가 주관한 여성대회 특강을 위해 전남도청에 간다고 했더니 춘란씨, 파초밥 해준다고 오란다. 

마루에 장작불 피워놓고 파초밥을 내왔다. 벌 한 마리가 비실비실 달라붙는다. 

"냅둬. 수벌이여. 곧 죽는당께. 따땃해서 들어왔는갑는디 저것들 불쌍해. 

날 추워지면 일벌들이 수벌들 야박하게 다 쫓아버린당께. 

나무에 붙어갖고 부들부들 떨다가 하루 이틀이믄 굶어 죽는디 눈 뜨고 못 보겄어. 

교접할 일 없응께 꿀 축낼께비 내쫓는 거지라. 죽은 수벌들이 벌통 주변에 가뜩이여. 

요즘 남자들도 똑같어. 힘 빠지믄 수벌 신세지라. 밥도 안 주잖어. 쯧쯧".

언론계 대선배이신 A씨. 요즘 소원이 이혼이란다. 

아파트 두 채 마련하고 은퇴했는데, 부인이 용돈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것. 

"늙은이가 돈 쓸 일이 뭐 있느냐"며 타박하는데 치사스러워 못 살겠단다. 

아파트 한 채씩 나누고 싹 갈라서고 싶지만 절대로 이혼을 안 해준다고 하소연.


현재 황혼 이혼 청구의 40%가 남자 쪽이다. 수컷들의 반란? 
그런데 수벌들이 쫓겨나는 것이 생태계의 정해진 운명이라면, 이는 남자들이 그리 살아온 업보 때문은 아닐는지. 
아서라! 업보에 남녀 차이가 어디 있나? 고단한 밥벌이로 서로들 애썼다. 
북망산천 멀어 보여도 문턱 밑이 황천이요 앞동산이 저승이라. 
뜬구름같이 태어났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인데, 등이라도 긁으려면 효자손보단 힘 빠진 남편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