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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드라마를 보는 이유

바람아님 2014. 11. 27. 18:59

(출처-조선일보 2014.11.27 김재원 KBS 아나운서)


드라마가 재미있다. 많이 보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빼앗긴 드라마는 '본방사수'도 한다. 

얼마 전 선악의 복수 대결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도 늦게 합류해서 봤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도 곧잘 본다. 

종합상사 신입 사원의 애환을 다룬 인기 드라마는 감정이입까지 한다.

"어? 선배님도 드라마 보세요? 달라 보이시네요." 

"글쎄, 남자도 중년을 넘어서면 드라마를 좋아한다던데,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드라마 보고 울기도 하세요? 드라마를 왜 보시는 거예요?"

후배들과 대화 중에 드라마 얘기가 나와 몇 마디 거들었다가 받은 질문이다. 

달라 보인다면 평소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싶지만, 아직 드라마를 보면서 울지는 않는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드라마가 좋아지는 건 굳이 호르몬 변화를 얘기하지 않아도 분명 그 이유가 있으리라.

내가 드라마를 보는 것은 악인의 형벌을 보기 위해서다. 

한때 탄광에서 일하는 분들이 나쁜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다. 공감한다. 

드라마에는 꼭 악인이 등장한다. 예전에는 선악 구도였지만 요즘은 '선'보다는 차악과 최악의 대결이 많다. 

드라마의 악인은 그래도 끝에 꼭 형벌을 받는다. 나는 그 순간 느끼는 통쾌함을 기다리며 드라마를 본다. 

현실에서는 악인들이 형벌을 잘 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사진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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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건·사고의 주범이 형벌을 피해 가는 이야기는 뒤로 미루련다. 

주변에 악인은 많다. 공공의 적은 차치하고, 나를 괴롭히고,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대개 형통한다. 

그들이 형벌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는 거다. 

드라마에서도 착한 주인공은 의도적인 복수를 하지 않는다. 

악인이 상황에 의해 형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나도 복수할 생각은 없다. 그저 그들이 내 인생의 동심원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참 어렵다.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악인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