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기생들은 요부의 기질을 타고나야만 최고의 기생으로 칭송받았다. 그 중 경주에
관기로 있던 한 기생과 그녀에게 걸려든 순진한 선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구전되면서 안타
까움을 사고 있다. 한양에서 내려온 젊은 선비는 부모의 덕에 꽤 넉넉한 노잣돈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발길 닿는 곳 마다 관가에 방을 빌려 며칠씩 묵으며 어여쁜 관기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그러던 중 경주에 발길이 닿게 되었고 그 곳에서 어린 관기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수태 많은 관기들을 만나왔지만 이토록 순진하고 참한 기녀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부끄러움이 많았고, 선비의 말 한마디에도 얼굴이 빨개지며 품위와 방정이 매우 높은 여인
이었다.
선비는 밤새도록 관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거쳐 왔던 유람지에 대해 여담을 나누기도
하고, 한양의 이곳저곳을 설명하기도 하며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고 있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분위기도 슬슬 무르익어 남녀의 운우지정을 맞출 때가 되었다.
선비는 슬슬 관기의 옷을 벗기고 잠자리를 가지려 하던 순간 관기가 갑자기 수줍어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는 원래 양갓집 규수였으나 가문이 몰락하여 관기가 되었습니다. 기녀가 된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남녀의 운우지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사옵니다”
선비는 남자와 처음 관계를 가진다는 관기가 더 없이 예뻐 보였고 성심성의를 다 해 교합의
즐거움을 알려 주리라 마음먹었다.
깊은 밤 어린 관기는 그렇게 첫 상대를 맞아들이게 되었고 선비 또한 묘한 흥분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관기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긴장됐던 하룻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잠자리에 행복해 하던 선비의 머리맡에서 관기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선비는 놀라 어린 관기를 품에 안고 우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관기는 선비의 품에 안겨 이제
남녀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선비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관기에게 이런 애틋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경주에서 만난 어린 관기는 그토록 조심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그에게 다가왔다. 결국 남은
여행을 모두 정리하고 경주에 남아 밤낮 남녀 교합의 즐거움을 나누게 되었다. 아무리 한양
땅에 돈이 많아도 가지고 온 여비는 쉽게 바닥이 나버렸다.
관기에게 온갖 장신구들과 비단옷을 사주던 선비는 며칠 새에 무일푼 날거지가 되버린 것이다.
결국 한양으로 돌아가 여비를 더 가져오고 이참에 관기를 첩으로 삼아 한양에 데려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선비는 급하게 짐을 싸며 관기를 불러 신신당부를 하기 시작했다. 관기는 떠나려는 선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내가 비록 돈이 없어 떠나지만 곧 돈을 들고 찾아 올 테니 부디 그 동안 기필코 정절을
지키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선비는 관기의 손을 꼭 잡고 제발 정절만은 지켜 달라며 부탁하는 것이었다. 관기는 그런
선비에게 정절을 지킬 테니 선비의 신체 일부를 정표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관기가 정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던 선비는 얼른 머리를 풀어 한 뭉치 뎅강 잘라 관기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하지만 관기는 자르고 나면 금방 자라는 머리칼 보다 자라지 않는 것을 달라고 애원하기 시작
했다. 선비는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절대 다시 자라지 않는 앞니를 뽑아 관기에게 건네
주었다.
이제 한양에 가 돈만 가져오면 되는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선비는 금방이라도 경주에 내려
가고 싶었지만 자금 상황이 여유롭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며칠 한양에 발목이 잡힌 그는
경주에서 올라온 선비들을 만나 자신의 귀한 기녀에 대해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그녀는 뜨내기 선비들이 정절을 운운할 때마다 그들의 앞니를 뽑아 간직하는
요상한 취미를 가진 요부였던 것이다.
이미 앞니 뽑고 한양 간 선비에 대해 소문이 왁자하게 퍼지고 있었다. 기녀에게 정절을 요구할
만큼 아둔한 선비에게 따끔한 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풍류객은 그 것을 모르고 앞니를 쏙 빼주었으니 그 후로 여자를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변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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