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중앙일보 2014-12-25일자]
안녕들하십니까? 저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애꿎은 저희들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됐기 때문입니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둥지에 있는 뻐꾸기의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마는 법이다.’
헌재 결정문의 한 구절입니다. 통진당은 뱁새의 종족 보존을 위협하는 뻐꾸기로, 통진당 해체에 반대하는 국민은 ‘뻐꾸기 알을 그대로 두는 뱁새’로 비유됐습니다. 졸지에 ‘대역(大逆)’ 혐의를 받는 사람들과 비교된 뻐꾸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희들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참고로 저희들의 본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사실관계부터 따져보겠습니다. 저희 뱁새의 상당수가 뻐꾸기가 낳은 알을 부화시켜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저희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 뱁새들이 바보라서 당하는 게 아닙니다. 뻐꾸기 알을 쪼아서 깨버리거나 둥지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것은 ‘착오로 인해 무고한 저희 뱁새의 알을 파괴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본능적 신중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학잡지 ‘네이처’의 ‘조류 탁란(托卵)의 생태학’이라는 논문(2010년 가을호)에 유력한 가설이라는 전제로 설명이 잘돼 있더군요.
또한 저희들은 그 어떤 새들보다 종족 보존에 성공해왔습니다. 지난해에 한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국립공원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 새가 저희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참새·박새보다 개체수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비결이 뭐냐고요? 저희는 번식기에 통상 두 차례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40~50마리씩 상생의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저희는 많이 수상해 보여도 쉽게 뻐꾸기 알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뻐꾸기 알이 맞네, 아니네 하면서 에너지를 허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도전과 응전의 긴장 속에서 종족의 번영에 힘씁니다.
참, 오늘이 성탄절이죠. 성모 마리아도 약혼자 요셉의 아들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탄생시켜 인류에게 축복을 선사했음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평화를!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둥지에 있는 뻐꾸기의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마는 법이다.’
헌재 결정문의 한 구절입니다. 통진당은 뱁새의 종족 보존을 위협하는 뻐꾸기로, 통진당 해체에 반대하는 국민은 ‘뻐꾸기 알을 그대로 두는 뱁새’로 비유됐습니다. 졸지에 ‘대역(大逆)’ 혐의를 받는 사람들과 비교된 뻐꾸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희들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참고로 저희들의 본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사실관계부터 따져보겠습니다. 저희 뱁새의 상당수가 뻐꾸기가 낳은 알을 부화시켜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저희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 뱁새들이 바보라서 당하는 게 아닙니다. 뻐꾸기 알을 쪼아서 깨버리거나 둥지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것은 ‘착오로 인해 무고한 저희 뱁새의 알을 파괴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본능적 신중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학잡지 ‘네이처’의 ‘조류 탁란(托卵)의 생태학’이라는 논문(2010년 가을호)에 유력한 가설이라는 전제로 설명이 잘돼 있더군요.
또한 저희들은 그 어떤 새들보다 종족 보존에 성공해왔습니다. 지난해에 한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국립공원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 새가 저희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참새·박새보다 개체수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비결이 뭐냐고요? 저희는 번식기에 통상 두 차례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40~50마리씩 상생의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저희는 많이 수상해 보여도 쉽게 뻐꾸기 알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뻐꾸기 알이 맞네, 아니네 하면서 에너지를 허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도전과 응전의 긴장 속에서 종족의 번영에 힘씁니다.
참, 오늘이 성탄절이죠. 성모 마리아도 약혼자 요셉의 아들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탄생시켜 인류에게 축복을 선사했음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평화를!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섶에서] 설렁탕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0) | 2014.12.28 |
---|---|
[일사일언] 사람 냄새 나는 목자 (0) | 2014.12.25 |
[일사일언] "제수씨구나∼" (0) | 2014.12.24 |
[일사일언] 무례와 희롱 사이 (0) | 2014.12.23 |
[일사일언] 눈 오면 생각나는 이름, 엄마 (0) | 201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