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사람 냄새 나는 목자

바람아님 2014. 12. 25. 11:41

(출처-조선일보 2014.12.25 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지난여름 '리얼 체험, 세상을 품다' 프로그램 촬영차 인도 라다크 히말라야 체험을 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도로인 5328m 타그랑 라(Taglang La)에 올랐다. 
낮에는 30도, 밤에는 영하의 날씨에 열흘 동안 텐트에서 산천을 화장실 삼아 보냈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복통과 두통을 달고 사는 고산 증세에 시달렸지만 쉰 살을 바라보는 삶에 
신선한 도전과 활력소가 되었다.

라다크 유목민들과도 사나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두 달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그들은 야크 털로 만든 천막에서 3대, 일곱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양과 야크 젖을 짜고, 치즈를 만들고, 양털로 옷을 만들었다. 
며느리는 네 살, 한 살짜리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스물여덟 살 아들은 400마리 양떼를 이끌고 
이른 아침 6㎞를 걸어 쉴 만한 물가, 푸른 풀밭을 찾아가 풀을 먹인 뒤 해 질 녘에 돌아왔다.

양몰이 개 한 마리와 먼 여정을 다녀오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양 400마리의 이름을 일일이 지어주고, 다 알고 있었다. 
누가 젖을 짜는 날인지, 어디가 아픈지 매일매일 살폈다. 
그릇된 길로 가는 양에게는 돌팔매질로 양 앞에 돌을 떨어뜨려 무리로 돌아오게 했다. 
한 마리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양몰이 개에게 나머지 양을 맡기고 찾아 나선다고 했다. 
어느 밤에는 눈을 찌를 정도로 잘못 자란 뿔을 등산용 칼로 잘라 주었다. 
칼이 무뎌 작업은 30분이 걸렸다. 발버둥치는 양의 눈에 눈물이 흘렀고, 목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좋은 목자 만난 복 받은 양들이 참 부러웠다.

지난 한 해, 지도자의 모습을 되돌아볼 일이 유난히 많았다. 
배를 버리고 떠난 선장,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한 상사, 제자들을 성추행한 스승까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던 '미생'의 오 차장 대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좋은 목자가 그립다.
[일사일언] 사람 냄새 나는 목자
이제 좋은 목자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좋은 목자가 되어 보련다. 
라다크 목동과 헤어지던 아침에 그와 포옹을 했다. 
그에게서 양 냄새가 났다. 나에게선 무슨 냄새가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