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4-12-29일자]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애기봉. 병자호란 때 기생 애기(愛妓)는 피란 중 평양감사와 생이별을 했다. 애기는 이곳에 정착한 뒤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오랑캐가 북녘 땅으로 끌고 간 감사를 그리워하다 병이 들어 숨졌다. 마을 사람들은 애기의 유언대로 그를 봉우리 부근에 묻었다. 1966년 서부전선 최전방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유래를 듣고 ‘쑥갓머리봉’ ‘154고지’로도 불렸던 이곳을 애기봉으로 이름 짓고 비석까지 세웠다.
▷2010년 12월 21일 오후 6시 반, 애기봉 등탑이 다시 불을 밝혔다. 2004년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중단된 점등이 6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북한은 점등 전날 “반(反)공화국 심리모략전”이라며 조준 타격을 예고했다. 그날 청와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행사 직전 이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이 문제를 논의하다 김황식 국무총리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김 총리는 “북한이 위협한다고 예고한 행사를 하지 않으면 우리를 얕잡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점등 후 한 시간쯤 지나 대통령에게 ‘이상 무(無)’를 알리는 메모가 전해진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높이 18m의 애기봉 등탑은 1971년 처음 만들어졌다. 등탑의 불빛이 20∼30km 떨어진 개성에서도 보일 만큼 화려해 대북심리전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올해는 해병대가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한 등탑 자리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성탄트리를 세울 예정이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과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에도 애기봉의 불은 꺼져 있었다.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24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애기봉 트리의 점등식이 무산된 것을 화제로 꺼내며 “상황이 바뀌었으니 다시 대화 계기를 만들자”고 권유했다. 김 부장은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불 꺼진 애기봉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지만 남북관계가 풀려 꽉 막힌 이산가족 상봉의 길이 활짝 열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최영훈 논설위원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대] 친정 식구 여행 가기 (0) | 2014.12.31 |
---|---|
아베 부부 앞에서 중의원 해산 비난한 일본 인기 록밴드 (0) | 2014.12.30 |
[길섶에서] 설렁탕 유감/서동철 논설위원 (0) | 2014.12.28 |
[일사일언] 사람 냄새 나는 목자 (0) | 2014.12.25 |
[분수대] "헌재에 항의합니다" - 뱁새의 대자보 (0) | 2014.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