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바위 꿈틀꿈틀··· 대궐 내려다보는 호랑이산
《서울 인왕산은 근육질이다. 우두둑! 손마디 꺾는 소리가 들린다. 금방이라도 근육을 풀면서 “끄∼응” 하고
일어설 듯하다. 아무리 봐도 힘깨나 쓸 것 같은 통뼈다. 오죽하면 실학자 유득공(1749∼1807)은 “(인왕산은)
사람이 팔짱 끼었던 양팔을 풀어놓은 듯, 양어깨에 날개가 돋친 듯하다”라고 말했을까. 한마디로 어깨가
레슬링선수처럼 떡 벌어졌다는 말이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돌들이 우당탕탕 솟아 있다. 기차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 부처바위 매바위 범바위
맷돌바위 이슬바위 모자바위 선바위 지렁이바위…. 멀리서 보면 달마대사 얼굴 같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숯검정 눈썹, 한 일자로 꾹 다문 입, 거칠고 성긴 구레나룻. 몸은 울퉁불퉁
뼈마디가 굵다. 억센 호랑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북악산 자락(현 청운중고교)에서 태어나 인왕산을 마주보며 살았다. 그의 평생
친구는 천재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소꿉친구 이병연(1671∼1751)이었다. 이병연의 집은 칠궁 동쪽 부근
으로 정선의 집과 가까웠다. 칠궁(七宮)은 ‘육상궁’(영조 생모) 등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그들은 같은 스승 김창흡 밑에서 배웠다. 이병연이 시를 써서 보내면 정선은 그림으로 답했다.
그림이 가면 곧바로 시가 왔다.
정선의 나이 일흔다섯(1751년)이던 여름날, 여든 노인 이병연은 앓아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선
한 달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정선은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문득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맑게 개기 시작했다.
물먹은 인왕산이 말갛게 다가왔다.
정선은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그 광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 덩어리,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 물에 흠뻑 젖은 소나무들. 바위를 타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 그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꿈틀
거리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마지막 가는 친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 하지만 이병연은 그
나흘 뒤에 죽었고 정선은 그 뒤로 8년을 더 살았다.
겨울 인왕산은 한 폭의 수묵화다. 꿈틀꿈틀 힘이 넘치면서도 고졸한 추사체다. 곳곳에 푸른 소나무가 희멀건
바위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바위틈 곳곳에선 물이 솟아난다. 인왕산약수터, 무악약수터, 인왕천약수터,
석굴암약수터, 버드나무약수터, 부암약수터, 돌산약수터…. 달고 시원하다.
한양 도성의 성곽은 인왕산 정상을 동서로 가른다. 무악동 홍제동은 한 뼘 차로 도성 밖이다. 성곽은 북악산
(북·342m)∼인왕산(서·338m)∼남산(남·262m)∼낙산(동·125m)으로 이어지는 약 18.2km 길이다.
무학대사의 주장처럼 만약 인왕산이 한양의 주산이 되었다면 필운대 일대가 궁터가 되었을 것이다. 좌청룡은
북악산, 우백호는 남산. 하지만 정도전은 “제왕이 남쪽을 바라봐야지, 어찌 동쪽을 보고 나라를 다스리느냐”며
반대했고 역시 태조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북악산이 주산, 인왕산은 우백호가 된 것이다.
인왕산은 헌걸차다. 좌청룡 낙산보다 힘이 몇 배나 세다. 그래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맏아들 상속이 잘 이뤄
지지 않았다는 속설이 있다. 무학대사는 ‘1000년 갈 왕조가 그 반 토막으로 줄어들것’이라고 말했다던가.
인왕산에 오르면 서울 장안이 발아래 보인다. 북악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와대도 손에 잡힐 듯하다. 저잣
거리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왕산에 올라 ‘나라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금 보듯 환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다. 이젠 한양 도성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인왕산 호랑이가 된 것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인왕산. 조선시대 경복궁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산(西山)’으로 불렸다. 산잔등에 오르면 어느 곳에서든 서울 장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복궁, 청와대가 손에 잡힐 듯하고, 저만치 남북으로 남산과 북한산 백운대가 호위하듯 서 있다. 인왕산은 거대한 통짜 돌산이다.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다. 이 중 조선 중종의 폐위 왕비 신 씨와 관련된 치마바위 사연은 애틋하다. 궐 밖으로 쫓겨난 신 씨가 임금이 볼 수 있도록 이 바위에 날마다 분홍 치마를 내걸었다는 것이다.
《서울 인왕산은 근육질이다. 우두둑! 손마디 꺾는 소리가 들린다. 금방이라도 근육을 풀면서 “끄∼응” 하고
일어설 듯하다. 아무리 봐도 힘깨나 쓸 것 같은 통뼈다. 오죽하면 실학자 유득공(1749∼1807)은 “(인왕산은)
사람이 팔짱 끼었던 양팔을 풀어놓은 듯, 양어깨에 날개가 돋친 듯하다”라고 말했을까. 한마디로 어깨가
레슬링선수처럼 떡 벌어졌다는 말이다.》
산잔등을 가르마 타듯 동서로 가로지르는 서울 성곽. 무악, 홍제동은 한 뼘 차로 도성 밖이다.
인왕산은 거대한 통짜 화강암 덩어리다. 이마까지 훤하다. 하얀 넙적 바위가 봉우리 쪽에 떡하니 박혀 있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돌들이 우당탕탕 솟아 있다. 기차바위 치마바위 삿갓바위 부처바위 매바위 범바위
맷돌바위 이슬바위 모자바위 선바위 지렁이바위…. 멀리서 보면 달마대사 얼굴 같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숯검정 눈썹, 한 일자로 꾹 다문 입, 거칠고 성긴 구레나룻. 몸은 울퉁불퉁
뼈마디가 굵다. 억센 호랑이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북악산 자락(현 청운중고교)에서 태어나 인왕산을 마주보며 살았다. 그의 평생
친구는 천재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소꿉친구 이병연(1671∼1751)이었다. 이병연의 집은 칠궁 동쪽 부근
으로 정선의 집과 가까웠다. 칠궁(七宮)은 ‘육상궁’(영조 생모) 등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그들은 같은 스승 김창흡 밑에서 배웠다. 이병연이 시를 써서 보내면 정선은 그림으로 답했다.
그림이 가면 곧바로 시가 왔다.
정선의 나이 일흔다섯(1751년)이던 여름날, 여든 노인 이병연은 앓아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선
한 달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정선은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문득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맑게 개기 시작했다.
물먹은 인왕산이 말갛게 다가왔다.
정선은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그 광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 덩어리,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 물에 흠뻑 젖은 소나무들. 바위를 타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 그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꿈틀
거리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마지막 가는 친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 하지만 이병연은 그
나흘 뒤에 죽었고 정선은 그 뒤로 8년을 더 살았다.
겨울 인왕산은 한 폭의 수묵화다. 꿈틀꿈틀 힘이 넘치면서도 고졸한 추사체다. 곳곳에 푸른 소나무가 희멀건
바위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바위틈 곳곳에선 물이 솟아난다. 인왕산약수터, 무악약수터, 인왕천약수터,
석굴암약수터, 버드나무약수터, 부암약수터, 돌산약수터…. 달고 시원하다.
윤동주문학관.
한양 도성의 성곽은 인왕산 정상을 동서로 가른다. 무악동 홍제동은 한 뼘 차로 도성 밖이다. 성곽은 북악산
(북·342m)∼인왕산(서·338m)∼남산(남·262m)∼낙산(동·125m)으로 이어지는 약 18.2km 길이다.
무학대사의 주장처럼 만약 인왕산이 한양의 주산이 되었다면 필운대 일대가 궁터가 되었을 것이다. 좌청룡은
북악산, 우백호는 남산. 하지만 정도전은 “제왕이 남쪽을 바라봐야지, 어찌 동쪽을 보고 나라를 다스리느냐”며
반대했고 역시 태조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북악산이 주산, 인왕산은 우백호가 된 것이다.
인왕산은 헌걸차다. 좌청룡 낙산보다 힘이 몇 배나 세다. 그래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맏아들 상속이 잘 이뤄
지지 않았다는 속설이 있다. 무학대사는 ‘1000년 갈 왕조가 그 반 토막으로 줄어들것’이라고 말했다던가.
인왕산에 오르면 서울 장안이 발아래 보인다. 북악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와대도 손에 잡힐 듯하다. 저잣
거리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왕산에 올라 ‘나라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금 보듯 환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다. 이젠 한양 도성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인왕산 호랑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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