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역도산(1)

바람아님 2013. 2. 28. 09:00

 

 

레슬링의 전설 역도산 이야기

 

 

스모 리키시 시절에 게쇼 마와시를 두른 역도산(리키도잔)

 

지금 일본의 토쿄 료고쿠 국기관에서는 일본 전통의 국기인

스모경기가 열리고 있다. 스모란? 평균체중 약 150 Kg이나

되는 거구들이 샅바(마와시)를 두르고 지름 4.55미터의 원형

으로 된 씨름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단판 승부를 겨루는

일본씨름을 말한다.

 

이 경기는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에서 TV를 통해서 독점 생중계

하기 때문에 전국의 스모팬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시청하고

또한 자기 고향 출신의 스모선수를 열띄게 응원을 보낸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레슬링의 영웅 역도산 ...
그의 한국 이름은 김 신락이다.

 

나는 왜 하필 일본의 스모에 역도산을 소개하려 하는가
역도산도 원래는 스모선수 출신으로스모등급 서열이

정상에서 세번째에 해당하는 산야쿠의 하나인 세키와케

까지 오르는 활약을 하다가 심한 민족차별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프로 레슬러로 전향해서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일본 가라테를 평정했던 최영의공공연히

한국인임을 알리며 활약했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역도산은

일본 스모선수로의 대성을 꿈꾸며 도일해서 나가사키현의

오무라시에 살던 모모타 미스노케의 양자가 되어 철저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활동해서 지금도 많은 한국인

들로부터 민족의 아이덴티티가 결여된 행적이 문제가 되어

냉전의 화살을 받는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사회에서의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적인 동정이 가지 않을수 없다.

 

1945년 이후 태평양 전쟁에 패한 일본에는 연합군 사령부가 설치되고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네들 식으로 일본인들을 길들이는 탓에, 모두들 심한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이때

 

가요계에서는 한국계 혈통의 피가 흐르는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해서
                  어린나이에도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선사했고,
스포츠계 에서는 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트 팀의 장훈(하리모토)이
왕정치, 나가시마 시게오와 더불어 소위 "환상의 3인방 최강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하고 "안타제조기"란 별명을 얻으며 맹활약 했고,

 

일본 스모계에 입문해서 인 세키와케까지 오르는 활약을 하다가
미국의 하와이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을 배워와서 일본에 프로

레슬링을 선보이며 일대 붐을 일으키고 스스로 희대의 영웅으로

군림했던 역도산분명 우리 민족과 일본인들에 있어서 삶의

활력과 용기를 불려일으켜 주기에 충분했다.

 

 

 

역도산은 일본 강점기인 1924년, 11월 14일,
북한의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신풍리에서 당시 정미소를
하던 김석태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신락이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운동신경으로 씨름에 소질을 보인 소년 김신락이

일본에서 스모를 하기 위해 건너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것은
15살때인 1938년에 있었던 조선일보 주최 씨름대회에서 큰 형인

김항락은 우승하고, 김신락은 3위에 입상해서 이를 눈여겨 본

일본의 형사보 오가타의 적극적인 권유로 1939년 도일해서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에서 모모타 미스노케의 양자가 된다.

 

이듬해인 1940년, 니쇼노제키 베야에 입문해서 리키도잔이란

시코나(스모선수의 이름)를 받아서 스모선수로써의 몸을 만들고
본격적인 맹연습을 해서 5월달에 거행된 하츠바쇼 (여름경기)에
출전해서 첫 씨름판에 서게 되었다.

 

역도산이 스모선수로써 최고의 지위에 오른것은 그의 나이 25살

되던 해인 1949년으로 산야쿠의 하나인 세키와케로 챔피언격인

요코즈나와도 명승부를 펼치며 주목을 받으며 활약했으나
이듬해에 돌연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은퇴를 해서 기대를 건

많은 스모팬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실망을 준게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스모선수가 은퇴할때는  통상 같은 숙소에서

한 밥을 먹던 동료들의 축하속에 스모선수들이 하는

<스모마게>라고 하는 상투머리를 짧게 자르는 단발식을

치루는데, 역도산은 이 스모 전통을 깨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 즉 외국인은 챔피언격인 요코즈나에 오를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서 이에 항거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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