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역도산(2)

바람아님 2013. 3. 1. 09:13

 

 

 

레슬링의 전설 역도산 이야기

 

 



 
1958년, 루테스를 꺽고
NWA 인터네셔날 프로 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역도산

 

스모를 그만둔 역도산은 니이타건설의 공사 자재부장 일을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어 연합군 총사령부가
주둔해서 공사를 발주하고 전국은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니이타 건설은 일본 아쿠자와 관련이 있는 회사로써
나중에 역도산의 운명을 매듭짖게 하는 숙명의 관계가 되었다.
니이타 건설에 근무하던때, 한 나이트 클럽에서 만나서 알게되어
의기투합으로 사귀게된 화와이 출신의 일본계 레슬러인
하로루도 사카다를 통해서 프로레슬가 되기로 결심한다.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 부흥책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인기 있던

스포츠를 소개하고 장려 하였다. 미국의 프리 메이슨 사단이

운영하던 <슈라이나즈 클럽>은 프로 레슬링경기로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둔 단체로 일본에도 연합군 사령부의 지원을

받아서 순회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15년간 불패의 신화를 이룩하던 일본 유도의 영웅

기무라 마사히코와의 건곤일척의 영욕을 가른 승부

 

*과격한 이미지의 프로 레슬러와는 달리
매우 가정적인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요리하는 역도산
1952년, 역도산은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프로 레슬링 수업을 받고 돌아와서 닛타 신사쿠,

나가다 마사오와 함께 일본 프로 레슬링 협회를 창립하고

정재계의 실력자들과 만나서 지원을 요청하고 레슬링협회

발전을 위해 진력했다.

 

그는 흥행의 성공을 위해서 외국에서 유명 레슬러를 불러들이고
일본 스모의 챔피언인 요코즈나 아즈마 후지등을 링에 올려서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자신은 일본 전통무도인 가라테를

접목시킨 소위 "가라테 촙"이라는 화려한 특기를 구사해서

외국의 거한들을 때려눕히는 시합을 펼쳐서 그때까지

생소했던 이 프로 레슬링이 흑백TV시대의 개막에 편승해서

일대 신드롬을 일으키고 흥행에도 성공하며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역도산을 흠모해 프로 레슬러의 꿈을 안고 일본에 건너가 제자가 되어

"박치기 왕"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김 일(오기 긴타로)

 

 

 

스승 역도산의 무덤을 찾은 제자인 세계적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세기의 대결"로 전 지구촌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 돼 있다.

 

 

 

김 일, 안토니오 이노키와 더불어
역도산의 제자 3인방의 한 사람으로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 레슬러 자이언트 바바

 

1950년대와 1960년 전반기 일본 프로 레슬링계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의 팬을 그토록 열광시키고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풍운아 역도산의 삶을 39년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1963년 12월 8일,역도산은 흥행을 위해 프로 레슬링 관계자들과
토쿄의 고급 나이트 클럽인 뉴 나틴 쿼터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마침 일본 폭력단 조직(야쿠자)인 스미요시파의 일원이었던
무라타 가츠시로와 시비가 벌어져서 결국 무라타의 칼에 맞아서
아카사카의 산노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1963년 12월 15일, 끝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했다.

 

 

 

프로 레슬링 영웅으로 한 시대를 화려하게 풍미했던 역도산이
야쿠자의 칼에 맞아 최후를 마친 아카사카의 산노병원

 

역도산은 세번 결혼을 했다.
일본에 건너가기 전에 북한의 고향 함경남도 신포시 신풍리에
첫번째 아내 방신봉이 있었고 딸도 하나 두었다. 그리고

일본 건너가서 1950년, 두번째 아내인 오자와 후미코를

만나 2남 1녀를 낳고 1959년까지 동거했다.

 

 

 

마지막 부인은 역도산이 숨을 거둔지 불과 6개월전에 결혼식을

올려 스위스에 신혼여행을 하고 돌아와 딸을 임신해 히로미를

낳은 경찰서장의 딸인 일본항공의 스튜워디스 출신의

다나카 게이코 이다. 꽃다운 나이에 6개월이라는 너무나 짧고

가혹한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는

지금도 망부의 유업을 받들어 주워진 운명을 달래며 조용히

집필 활동과 레슬링 관계의 일을 도우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63년 6월 5일, 역도산이 세번째 아내인

다나카 게이코와의 결혼식을 올릴때의 사진

 

 

중:역도산의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의 근영사진

2011년 5월 은퇴한
한국 출신의 스모선수 김 성택(가스가오)의 단발식때
머리를 자르는 역도산의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
역도산의 두번째 부인인 오자와 후미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로, 일본 역대 최고령의 프로 레슬러

 

역도산이 영면하는 유택, 토쿄의 이케가미 혼몬지

 

 

 

 

 

 

 

 

 

 
美空 ひばり-  男の自信

'生活文化 > 그때그일그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라리 죽어 한무덤에 묻힐수 있다면  (0) 2013.03.03
눈물의 모정  (0) 2013.03.02
역도산(1)  (0) 2013.02.28
인왕산(2)  (0) 2013.02.27
인왕산(1)  (0) 2013.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