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만물상] 日 교과서 '위안부 지우기'

바람아님 2015. 1. 12. 10:44

(출처-조선일보 2015.01.12 김태익 논설위원실)


나치의 만행을 얘기할 때 흔히 아우슈비츠를 떠올리지만 독일 바이마르 근처에 있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도 악명 높았다. 
독일 내에선 가장 큰 수용소였다. 이곳에서 1937~1945년 6만5000명이 강제 노동, 생체 실험,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수용소장의 아내 일자 코흐는 숨진 수용수의 살갗을 벗겨 핸드백, 전등 갓을 만들어 '부헨발트의 마녀'라 불렸다. 
뜨거운 여름 수용수에게 소금물을 먹이고 난방기를 틀어 목 타 죽게 만든 고문실이 지금도 남아 있다.

▶몇년 전 부헨발트에 갔더니 여러 학교에서 꽤 많은 학생이 견학 와 있었다. 
독일은 우리 중학 3학년에 해당하는 9학년부터 13학년까지 나치 만행에 대한 현장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보통 박물관들은 '전시품을 만지지 마시오'라고 주의를 준다. 
하지만 부헨발트에선 각종 고문 기구와 수용수의 눈물 밴 유품들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다. 
자기네 역사의 가장 어두운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스럽게 교훈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만물상] 日 교과서 '위안부 지우기'
▶"과거에 눈 감는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 
독일 통일 주역 중 한 사람인 바이츠제커 전(前) 독일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런 얘기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들려주는 게 '쇠 귀에 경 읽기'가 된 지 오래다. 
총리를 지내고 지금은 부총리로 있는 사람이 
"(일본 재무장을 목표로)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나치의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고 버젓이 늘어놓는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에 눈 감고 현재를 보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리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이들에게 "나는 전에 잘못을 했지만 너는 그러지 말아라"고 가르친다. 그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다. 
독일은 패전 직후부터 그걸 해서 아이들을 세계 시민으로 키웠다. 
싸우고 갈등을 겪던 이웃 나라와 화해를 하고 유럽의 중심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일본의 한 출판사가 고교 공민 교과서에서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과 노동자 강제징용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문부성은 이를 승인했다. 지금은 고교 교과서를 검정할 시기가 아니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 내용을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삭제했다는 게 심상치 않다. 
일본 정치권과 보수 세력의 합작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된 분위기가 출판사에 압력이 됐을 수 있다. 
이번 일을 신호탄으로 일본 초·중학교에 이어 고교 교과서에서도 허울뿐인 위안부 서술 내용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잘못된 역사 교육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라나는 일본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