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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人間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

바람아님 2015. 1. 21. 18:37

(출처-조선일보 2015.01.21 오연석 경기대 교수·죽음학교 교장)

"여러분과 함께해 행복했어요"
자기 장례식에 이웃 초대하고 편안히 죽음 맞은 오르빌씨
우린 주삿바늘 꼽고 고통받다 마지막 대화도 없이 죽어가
웰빙만큼 웰다잉 고민할 때

오연석 경기대 교수·죽음학교 교장2004년부터 일 년에 몇 달씩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바로 옆집에 터너 오르빌씨가 살았다. 2년 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원을 잘 가꾸는 오르빌씨에게 한 수 배울 겸 해서 이웃사촌처럼 친하게 지냈다. 
부인은 우리가 정착하기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집 정원에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유난히 많았고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끔 꽃 이름을 물어보면 오르빌씨는 뒤통수를 긁으며 "하, 마누라가 이 꽃 이름을 일러주었는데" 
하면서 부인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에 민망해진 나는 그 뒤론 어려운 꽃 이름에 대한 질문은 피했다. 
때가 되면 정원 한편에 심어 둔 야채며 고추·가지·양파 등을 뽑아 우리 집 뒷문 앞에 가져다주는 
따뜻한 분이셨다. 우연히 알게 된 오르빌씨의 생일날에 케이크와 카드를 준비해서 찾아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며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아이처럼 매우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부턴가 하나뿐인 오르빌씨의 딸이 캘거리에서 빈번하게 방문하고 손자 손녀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그는 자주 병원을 오가더니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호스피스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우리는 평소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해 병원을 찾았다. 으레 우리가 그러듯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담아 
인사말을 전하자 오르빌씨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와 이웃으로 함께한 기간이 행복했고 
소중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에 우리를 가족석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약간 당황했지만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오르빌씨와 이웃으로 산 10년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했다. 과연 우리나라에 오르빌씨처럼 충분히 죽음을 준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행복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다"라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년 만난 이웃에게도 그렇게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물며 가족과는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재작년에 큰형님께서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서울로 옮겨 종합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중환자실을 반복하더니만 몇 주 만에 돌아가셨다. 
병실을 찾을 때마다 코와 입에는 호스를, 손목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을 꽂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중환자실에서 만난 형님께선 먹을 것을 달라고 간청하셨다. 
간호사에게 요청했지만 기도가 막히면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다음날 연락을 받고 달려갔지만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코와 입에 호스가 끼워져 있어 어떤 대화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형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의사의 사망진단이 떨어지고 한 시간 정도의 절차를 마친 후 형님은 병원 지하실에 있는 냉동 시신(屍身) 안치실로 보내졌다. 
그리고 영안실 옆 장례식장에서 정해진 절차대로 2박 3일을 보낸 후 장지로 옮겨졌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나도 그렇게 죽어가야만 할까? 
오르빌씨의 죽음이 떠오른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어야 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생소한 중환자실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너희와 함께 한 세상이 참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죽음의 절차가 유지된다면 나의 죽음도 형님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말기암(癌)으로 판정받은 사람의 97%가 항암치료를 받고, 호스피스 치료보다 5배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병상에서 항암제 투여와 주삿바늘로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다섯 번째 북벌(北伐)을 떠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지했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북두(北斗)에게 기도를 올렸다. 
조금만 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간절하게. 그는 7일간 자신의 생명을 상징하는 등불을 지키려 했다. 
마치 중환자실의 생명 연장 장치처럼. 그
러나 사마의의 공격을 알리려고 달려오던 장군 위연이 등불을 밟는 바람에 그의 간절한 소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다. 누구인들 주어진 명(命)을 어찌할 수 있으랴!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가 도시화로 핵가족화된 지는 이미 수십 년이고, 이젠 빠르게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시골의 대가족 사회처럼 장례가 축제처럼 치러졌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그렇게 되돌아갈 수도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어떻게 사람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진지하고 엄숙하게 요구된다. 
여전히 우리 정서로는 자신이 원하더라도, 사실상 죽음의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평소의 노력이 인간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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