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집에서 포도주 한잔하자는 제안이었다.
그의 재래식 가옥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서울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무쇠 난로가 있었고,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 중이었다.
무쇠 난로는 화덕 역할도 하여서 누군가는 그 위에 소시지를 데우거나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떡볶이를 만들어 권하고 있었다.
'노변정담(爐邊情談)'이란 말 그대로 난로는 겨울철 추위만 녹인 것이 아니라 처음 본 사람들끼리
어색한 감정도 함께 녹이는 훌륭한 장치였다. 대문은 활짝 열렸고, 주인과 객이 따로 없었으며,
음식과 대화를 함께 나누었으니, 팀 오라일리가 말한 '개방, 참여, 공유'라는 웹 2.0 정신 그대로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주인은 마당에 심은 살구나무 열매로 만든 술을 내어놓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생전에 애용했다는 30년 된 술병에 담아왔다.
그의 집에는 새로운 것들이 별로 없었다. 의자와 탁자, 벽걸이까지도 대를 이어 사용하는 물건들이었다.
그 물건들은 주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어느 사이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 그가 만난 사람들, 그의 인생에 흠뻑 빠져들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집 초대를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모임이라고 하면 대부분 집에서 모이는 것을 의미했다.
어느 때인가부터 식사는 식당에서 하고 집에서 2차로 와인이나 커피를 하는 흐름으로 옮아갔다.
그러던 것이 요즘 초대라고 하면 '당연히' 식당이나 카페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