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3치' 내 인생

바람아님 2015. 1. 17. 10:02

(출처-조선일보 2015.01.13 손관승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저자)


손관승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저자오늘도 나는 카페로 출근한다. 
커피를 마시며 책 쓰고 강연 자료도 정리하고 있으니 이곳을 나의 모바일 오피스라 부를 만하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3치'로 구분된다. 
첫 번째 직업이었던 언론인이 '가치'를 다루고 논하는 직업이었다면 
두 번째 자리였던 방송 플랫폼 기업의 CEO는 '수치'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주가, 매출 같은 것들이 숫자로 요약되어,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당하는 직업이었다.

이제 나는 사무실보다 카페에 익숙한 '브런치 인생'을 살고 있다. 
다른 말로 지식 유목민이라 부른다. 
직(職)이 끝났다고 결코 업(業)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 경험, 기술 같은 무형자산을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바꿔주면 된다.

[일사일언] '3치' 내 인생직장인에겐 로망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이 분야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유목민을 의미하는 노마드(Nomad)를 어설프게 
추구하다간 인생이 'No Made'되기 쉽다. 
망가진다는 뜻이다. 
나이 들어 '로망'이 잘못되면 '노망'으로 
비치기도 한다. 
커피처럼 남과 다른 색깔과 향기를 보여줘야 
선택된다. 
차별화된 콘텐츠가 관건이다.

카페에서 명함을 교환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내 손에는 명함이 없다. 
실상은 1인뿐인 연구소 명함이라도 새겨서 
다니라는 권유도 있지만 허세에 낯간지러워 
그냥 다닌다. 
명함과 직함이 없으니 가끔 상대가 호칭에 
곤혹스러워하지만, 내 생각을 전하면 오히려 
반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불만 없는 직업 없고, 걱정 없는 인생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선물이다. 
자유라는 이름의 직장에 취업했으니 
이름 석 자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