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1-13 일자]
엄을순/문화미래이프 대표
날이 갈수록 전 부인 B와의 만남이 더 잦아지더니 전 부인 B와 사장 A는 다시 불붙게 되었고, 이 사실을 눈치챈 마담 C는 둘을 간통죄로 고소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억세게 운(?) 나쁜 사장 A는 간통죄로 두 번씩이나 징역살이를 했다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변호사의 실제 사례란다.
간통죄는 부부의 원만한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났다.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면 처벌하겠노라고 남편에게는 사전에 겁주는 역할을 하고, 이혼당하고 쫓겨나는 힘없는 부인에게는 위자료 받아낼 명분을 주고.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간통죄 존재 자체가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사회 진출을 통해 경제력을 손에 쥔 고학력 여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혼당하고 쫓겨나는 힘없는 부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고, 부적절한 관계의 주체도 남녀 비율이 비슷해져 가고 있으며, 굳이 간통 고소를 통하지 않더라도 위자료를 받아낼 법적 장치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가. 간통 고소의 유형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이미 깨져버린 지 오래된 가정을 지킬 의향도 없는 무늬만 부부인 사람들이 위자료 더 챙기려는 목적으로 주로 고소를 하는데, 이혼 위자료보다 간통 위자료가 훨씬 더 많아서란다. 그런데 얼마 전 이혼소송 중인 무늬만 부부인 관계에서는 비록 법적으로는 부부라 할지라도 간통 고소가 불가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혼인관계가 파탄난 사람의 불륜은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남남인 듯 남남 같은 남남 아닌 부부들. 부부생활 동안 쌓인 복수 때문이든, 많은 위자료 때문이든 간통 고소도 이제 더 이상 쉽진 않겠다(그런데 궁금한 것 하나. 주요 선진국 중 유독 우리나라만 아직도 간통죄 처벌조항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국가가 직접 나서서 챙겨주지 않으면 파탄날 가정이 우리나라에만 유독 많은가, 아님 우리나라는 국가가 힘이 남아돌아서 그런가).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지금 심리 중이라고 한다. 드디어 이제 위헌 결정을 할 때가 됐나 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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