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1.24
양성희/논설위원
이 발언 덕에 페미니스트가 한동안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속 ‘페미니스트’의 뜻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사전은 페미니스트를 “1. 여권 신장 또는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 정의했다. 페미니즘이 그저 양성평등을 넘어 모든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 맞서는 것, 혹은 생명 존중으로 확대된 게 한참인데, 언제적 페미니즘인가 싶다. 게다가 여자에게 잘해주면 페미니스트다?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김군에게서 2011년 노르웨이 오슬로 총기 난사를 떠올렸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다문화와 페미니즘을 혐오한다며 77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배 교수는 “IS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점을 서구 중심주의나 기독교, 미국 등으로 환원함으로써 사회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집중시킬 수 있는 손쉬운 타격 대상을 제공하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 혐오”라면서 “만약 우리 사회에 총기 관리가 안 됐다면 어땠을지 끔찍하다”고 했다.
물론 어디나 극단주의 성향은 꼭 있어서 흔히 ‘꼴페미’라 불리는 페미니즘의 근본주의적 경향은 나 역시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 페미니즘은 과도하게 오해되고 있으며, 인터넷 하위 문화로 자리 잡은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분풀이 역시 도를 넘고 있다. 배 교수는 “경쟁·취업난 등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쉽게 여성 혐오로 향하고 있다”며 “이를 ‘중2병’ ‘일베종자’ 같은 멸시의 단어로 타자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역시 표현의 자유와 한계라는 차원뿐 아니라 ‘계층 갈등을 노정해 온 프랑스 사회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테러범을 키운 것은 프랑스 자신”(알랭 바디유)이란 인식이다. 어쩌면 좌절한 우리 청년들은 여성들을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짓누르는 새로운 억압으로 상정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에 맞서겠다며 18세 김군이 떠난 것이다. 섬찟한 얘기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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