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6.03.07. 21:03
고려 말 우왕(1374~1388)부터 시작되었으니 신입생 신고식의 역사는 뿌리 깊다. 처음 취지는 그래도 긍정적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의 권세 덕분에 벼슬길에 오른 ‘음서’ 자제들의 콧대를 꺾으려 했다니 말이다. 국립대학 격인 성균관 입학생들도 절도와 격식을 갖춘 입학식을 거쳐야 했다. 재회(齋會·학생회)의 간부들은 새내기들과 상읍례(팔꿈치를 구부려 가지런히 모은 손을 눈높이로 올리는 예절)를 나눴다. 상견례 후에는 비공식적인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사(기숙사)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은 자신의 재력에 걸맞은 음식을 차려놓고 선배들과 나눴다. 이것이 신방례(혹은 접방례)이다. 신방례는 처음엔 순수했을 테지만 차츰 변질됐다. “재학생들이 신입생들에게 주악(춤과 노래)까지 동원하여 술판을 벌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가난한 유생들은 기숙사 입소를 포기합니다”(1541년 예조의 상소문).
중종 임금은 신방례 때 술과 음식을 강요한 선배들에게 ‘과거응시 금지’의 엄벌을 내린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은 좀체 근절되지 않는다. 성균관에서 시작된 ‘갑질’이 대과 급제 후 관리로서 첫 부임할 때 ‘슈퍼 갑질’로 진화한 것이다. 지병으로 몸상태가 엉망인데도 술·안주를 잔뜩 준비하고 재롱을 떨다가 과음 때문에 죽고, 선배들의 집단 구타 때문에 죽고…. 온몸에 진흙과 오물을 칠하고…. 다산 정약용까지 신입생 환영회 경험담을 언급하며 “절뚝걸음으로 게 줍는 시늉하고, 수리부엉이 울음소리를 내고…. 시키는 대로 다 해보았지만 안되는 걸 어쩌겠냐”고 토로했다.
‘다산의 흑역사’를 읽으니 요즘 선배들의 황당한 요구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당혹감을 표하는 대학 새내기들의 한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가만 보니 수백년 공통으로 등장하는 원흉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술’이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 때 재현한 전통의 신방례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각종 문헌을 뒤져 조선시대 신방례를 따라 했다는데, 딱 하나 다른 게 ‘술판’이 없다는 것이다. 성대뿐 아니라 이미 ‘술 없는 OT(오리엔테이션)’를 표방한 학교들도 제법 된다. 지식의 전당인 대학에서 첫걸음을 술로 시작해서야 되겠는가.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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