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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개천에서 ‘용’ 나게 하려면

바람아님 2016. 3. 6. 23:32
[중앙일보] 입력 2016.03.05 15:47

최근 스탠포드 대학 총장이 된 마크 테시에 라빈에게 붙은 수식어는 ‘집안 최초의 대졸자’다. 한국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미국인들은 ‘집안 최초의 대졸자’를 아주 중요한 업적으로 여긴다. 그만큼 어려운 신분의 변화를 이뤘냈다는 데 대한 격려와 칭찬인 것이다.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 (Affirmative Action)은 소수계 인종이나,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의 대학 입학은 물론 사회 진출에 가산 점수를 줘 사회의 불평등 구조로부터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집안 최초 대졸자’ 의 경우도 이런 우대 정책이 적용된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그만큼 어려운 환경적 열등 요소를 사회적 구제의 이슈로 보기 때문이다.

덴마크 등 북구 유럽과 일부 아랍 국가들에서는 아예 모든 교육이 무상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대학원 전부 무상이다.심지어 대학생들에게는 생활비까지 대주고 있다. 생계로 인해 학업을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재정 상태나 열악한 가정 환경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평등을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은 인권과 연관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인간 누구나 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빈부 차이에 의한 기회 불균등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은 사회적 안전망을 조속히 갖추는 데에 있다. 사회적 안전망은 곧 선진적인 복지 제도다. 정부, 정치인, 국가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우리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가난은 아이들의 꿈을 아예 싹 조차 트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난하면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에 제한을 받게 된다. 여행의 기회,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볼 기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 기회, 폭넓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서구 선진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한국 부유층의 젊은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가난한 아이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적은 기회'는 그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한다. “뭘 봤어야 알지!”인 것이다. 이것은 곧 고급 정보,다시 말해 '부'로부터의 제한을 말한다.학맥·인맥·혈맥의 세상은 인터넷으로만으로는 접할 수 없다.

‘집안 최초의 대졸자’란, 아이가 자라는 동안 폭이 더 깊고 더 넓은 대화를 해 줄 사람, 다양한 세상을 알려줄 사람, 미래의 삶을 멘토링해 줄 수 있는 지식인이 집안에 없었다는 뜻과 통한다. 경영인 집안에서 경영인 자식이 나오고, 예술가 집안에서 예술가 자식이 나오고, 연예인 집안에서 연예인이 나오듯이, 경험의 세계를 물려줄 그 누군가가 집안에 없었음을 뜻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꿈도 작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예단 또한 아이들의 성장에 장애를 준다.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을 상대로 성공하는 커리어에 대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청을 받은 나의 모임 멤버들은 변호사나, 의사· 기업인 등이었는데, 나름의 우려는 '아이들에게 이런 직업들이 너무 괴리감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초청자로부터 돌아온 답이 우리를 부끄럽게했다.

“가난한 아이들의 커리어 관련 강연이 대체로 커피 바리스타, 빵 굽기 같은 것들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에 한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왜 우리는 변호사나 의사 같은 분들을 만날 수 없느냐고요.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왜 안 가르쳐 주고 늘 빵굽기와 커피 만들기를 가르쳐 주느냐고요.”

아이들은 보여주는 만큼, 가르쳐 주는 만큼 성장한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이 우주인이 되는 꿈, 세계적 기업의 CEO가 되는 꿈,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꿈을 아예 꾸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진정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은 다른 어떤 산업도 아닌, 우리의 '꿈을 꾸는 아이들'이다.

이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