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2.11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유감(有感)'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처음엔 기린 뿔에 받혔나 싶더니만, 점차 거북 터럭 긁는 것과 비슷하네(初疑觸麟角, 漸似刮龜毛)."
무슨 말인가? 기린 뿔은 희귀해 학업상의 큰 성취를 비유해 쓴다.
위나라 장제(蔣濟)가 "배우는 사람은 쇠털 같은데, 이루는 사람은 기린 뿔 같네(學者如牛毛, 成者如麟角)"라 한 데서 나왔다.
거북 등딱지는 아무리 긁어봤자 터럭 한 올 못 구한다. 거북 털 운운한 것은 수고만 하고 거둘 보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처음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을 땐 자신이 넘쳤고 뭔가 세상을 위해 근사한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갈수록 거북 등을 긁어 터럭 구하는 일과 다름없게 되어 아무 기대할 것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소동파가 '동쪽 언덕[東坡]'이란 시의 제8수에서
"거북 등 위에서 터럭 긁으니, 언제나 털방석을 이루어볼지(刮毛龜背上,何時得成氈)"라 한 탄식에서 나왔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금 취해 달 보며 짓다(小醉對月有作)'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온갖 일 참으로 말머리 솟은 뿔과 같고, 길은 막혀 어느새 거북 등 털 긁고 있네(萬事眞成馬頭角, 途窮已刮龜背毛)."
늙마에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세상일은 말 머리에 솟은 뿔처럼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일들뿐이었고, 그간 자신이 애써온 일들이라 해야 거북의 등을 긁어 얻은 터럭으로 담요를 짜겠다고 설친 꼴이었다는 술회다.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도 만년에 거제도로 귀양 가 시를 지었다.
"십 년간 거북 등 긁어 모포를 짜렸더니, 흰 머리로 바닷가서 거닐며 읊조리네(十年龜背刮成氈, 白首行吟瘴海邊)."
10년 벼슬길에서 애쓴 보람이 귀양으로 돌아왔다. 나는 거북 등을 긁어 얻은 털로 담요를 짜려 한 사람이었구나.
안 될 것이 뻔하니 쫓겨난 굴원(屈原) 꼴 나기 전에 기대를 접고 외면해 돌아설까? '그래도'
나 '나마저'하는 마음 한 자락에 얹어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볼까? 가뜩이나 연말의 스산한 마음이 오락가락 죽 끓 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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