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 효과로 이중자화상 그린 에스테스
호퍼는 모서리 구부러진 창문으로 고독에 갇힌 현대인 모습 나타냈죠
건물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창문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졌어요.
탁한 실내 공기를 맑은 공기로 바꿔주고, 햇빛이 실내에 들어오는 통로가 되기도 해요.
사람이 밖을 내다볼 수 있게도 해주지요.
그리고 때로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도 한답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미술가들은 일찍부터 창문을 다양한 표현의 도구로 활용했어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얀 페르메이르가 대표적이지요.
- ▲ 작품1 - 얀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60년
작품1은 부엌에서 여인이 도자기에 우유를 따르는 모습을 담았어요.
그림을 보면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평범한 가정집 부엌을 실제로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지 않나요?
왜 그림이 아니라 실제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바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고 환한 빛 때문이에요.
빵 바구니와 빵 조각, 물병, 벽에 걸린 놋쇠 주전자와 바구니를 자세히 보세요.
빛 알갱이들이 물체 표면에서 은가루처럼 반짝이는 게 보이나요?
빛은 갈라지고 금이 간 벽, 못과 못 자국, 바닥에 놓인 발 난로까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식사 준비를 하는 여인의 흰 두건과 노란 윗옷, 파란 앞치마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돋보이게 만들어요.
이 그림은 광학(光學)에 관심 많던 페르메이르가 빛의 효과를 연구하며 창문을 그렸다는 미술사적 지식까지 알려준답니다.
그가 '빛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 작품2 - 에드워드 호퍼, 밤샘하는 사람들, 1942년
미국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도 페르메이르처럼 창문을 즐겨 그렸어요.
호퍼가 늦은 밤 도시의 거리 풍경을 표현한 작품2에도 창문이 나오네요.
그림 속의 사람들은 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걸까요? 쓸쓸하고 고독하기 때문이에요.
호퍼는 고독한 사람들의 심정을 눈빛과 표정, 자세로 알려주고 있어요.
그림 속에 나란히 앉은 남녀는 전혀 다정해 보이지 않지요.
서로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화도 없이 각자 딴생각에 잠겨 있어요.
등을 돌리고 앉은 남자의 뒷모습에서도 쓸쓸함이 풍깁니다.
호퍼는 고독을 강조하기 위해 이 그림에서 모서리가 구부러진 사다리꼴 형태의 커다란 유리창을 그렸어요.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술집 안의 사람들을 아무런 관심 없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요.
호퍼는 자기만의 고독에 갇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현대인의 외로운 마음을 창문을 빌려 말하고 있어요.
▲ 작품3 - 리처드 에스테스, 이중자화상, 1976년
또 다른 미국 화가 리처드 에스테스도 커다란 창문을 그렸어요. 작품3을 보세요.
앞서 나온 호퍼가 그린 창문보다도 크기가 훨씬 크지요?
에스테스는 왜 이렇게 큰 창문을 그렸을까요?
먼저 상점 유리창을 자세히 보세요. 유리창에 양손을 허리에 얹고 삼각대 위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예술가와 두 대의 자동차, 가로수, 도로 표지판, 길 건너편의 가게가 비치는군요.
상점 안에 있는 콜라가 나오는 기계와 의자 모습도 보여요.
재밌게도 그림 한가운데 점처럼 작게 예술가의 모습이 또 한 번 비치는군요.
이 그림은 뉴욕의 도시 풍경화이면서 화가의 모습을 그린 이중자화상인 셈이에요.
에스테스는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길거리 풍경,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 풍경을 함께 표현해 관객을 의도적으로 혼란에 빠뜨리고 있어요.
에스테스는 유리 고유의 반사 효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자 캔버스 전체를 차지하는 커다란 유리창을 그린 거예요.
- ▲ 작품4 - 앙리 마티스, 프랑스 방스 로사리오성당의
- 스테인드글라스, 1948~1951년. /AFP
그런가 하면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는 창문 자체가 예술인 작품을 창조했어요.
작품4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방스에 자리한 로사리오성당의 실내를 찍은 사진이에요.
벽면을 식물 문양으로 장식한 것은 마티스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재료에 안료를 넣어 만든 색 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유리 겉면에 색을 칠하여 만든 장식용 창유리를 말해요.
마티스는 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를 주제로, 노랑과 파랑, 초록색만을 써 나무 이파리를 표현했어요.
밝은 햇빛이 창문에 비치면 신이 창조한 빛과 인간의 창작품인 예술이 결합하여 성당 실내가 '천국의 정원'처럼 보인답니다.
마티스가 왜 창문을 캔버스로 사용했는지 알겠지요?
그는 자연의 선물인 빛으로 그린 그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껏 창문을 '벽이나 지붕에 낸 작은 문'이라고만 여겼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새로운 눈으로 창문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예술'이라는 이름의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창문 밖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해본 적이 있나요? 오늘 잠시 짬을 내어 창문 밖을 내다보고,
그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 하나를 골라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표현해 보세요.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 모습이 새롭게 다가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