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2. 10. 6. 03:18
김동길 교수는 서양문화사 강의를 연세대 강의실이 아니라 강당에서 했다. 2000명이 넘는 수강생을 수용할 강의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석부가 77쪽에 달했다. 출석 체크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결석자는 적었다. 청강생이 더 많이 들어와 강당 정원을 초과할 때가 많았다. 그의 강의는 힘이 있었고 유머가 넘쳤다. 김 교수를 흉내 낸 최병서의 개그보다 그의 강의가 더 웃겼다. 엄청난 인기였다.
▶글과 말에서 동시에 달인은 드물다. 김 교수는 드문 사람이었다. 타고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20여 년 동안 매일 아침 6시 미국 한인 방송을 통해 강연을 했다. 방송국 사정 때문에 갑자기 결방 소식을 들은 날에도 카메라 앞에서 그냥 강연했다고 한다. 글도 200자 원고지 석 장씩 매일 썼다. 김 교수는 “혼수상태가 될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했다. 실제로 병석에 들기 직전인 지난 설날까지 글을 올렸다.
https://v.daum.net/v/20221006031813446
[만물상] 자유인 김동길
'生活文化 > 그때그일그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동생·고모 아들과 결혼..'막장 근친혼' 결말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0) | 2022.10.23 |
---|---|
[단독]故 이대준씨, 中어선에 먼저 발견된듯.."한자 구명조끼, 붕대 착용" (0) | 2022.10.15 |
'보수 원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향년 94세(종합) (0) | 2022.10.05 |
"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지독한 사랑이 시작됐다 (0) | 2022.10.02 |
'70년 군주' 엘리자베스 英여왕 세계와 영국에 작별 고하고 영면(종합2보) (0) | 202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