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기자의 시각] 통일의 他山之石, 예멘

바람아님 2015. 2. 5. 09:38

(출처-조선일보 2015.02.05 정지섭 국제부 기자)


	정지섭 국제부 기자 사진
독일 통일 다섯 달 전인 1990년 5월 아라비아반도에서 또 다른 통일 소식이 전해졌다. 

공산주의와 아랍 민족주의 이념으로 20여년간 갈라져 있던 남북 예멘이 예정보다 6개월 빨리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는 뉴스였다.

독일 통일에 가려지긴 했지만 당시 예멘 통일은 독일보다 훨씬 극적이면서 이상적이었다. 

식민지 유산 청산과 빈곤 퇴치라는 공동 과제를 안은 두 예멘이 1980년대 유전 개발 등 경제 협력 등을

계기로 차근차근 물밑 대화를 진행해오다가 전격적으로 통일을 발표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완벽한 무혈(無血) 평화통일이었다.

통일 예멘은 전제 왕권 국가들로 가득한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가 합쳐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변혁을 추진했다. 

예멘 통일에 대해 당시 조선일보는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됐다'는 사설로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후 이 나라가 걸어온 길은 전격 통일 발표와 장밋빛 청사진만큼이나 극적인 몰락의 연속이었다.

통일 후 정권에서 극심한 소외감을 느낀 남예멘 정치 세력들이 1994년 5월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내전이 벌어졌다. 

북예멘 시절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집권한 살레 대통령 정권은 장기 독재와 부패·무능으로 국민의 공적(公敵)이 됐다. 

소외됐던 각 정파와 종파들은 반정부 세력으로 뻗어나갔다.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2012년 살레 대통령이 축출된 뒤 나라 사정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짓밟혔다. 

사우디 등에서 넘어온 알 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세력들의 테러 전초기지가 된 것이다. 

정권은 얼마 전 북부 시아파 세력의 쿠데타로 무너졌고 수니파 정부, 시아파 반군, 남부를 장악한 알 카에다 지부로 

나라가 세 조각 날 위기에 처했다. 예멘은 현재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활개치는 시리아·이라크 등과 함께 

한국 정부가 지정한 여행 금지 국가다. 차라리 분단 시절이 더 나았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동독이 동유럽의 옛 소련 위성국가들과 지리·정치적으로 밀접했던 것과 달리 남예멘과 북한은 주변국과 활발하게 교류하기 

어려웠던 사회주의 진영에서조차도 별종처럼 고립된 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반도 정세가 주변 4강에 휘둘렸던 것처럼 

예멘 역시 미국·사우디·이란 등 강국들의 세력 다툼 무대였다는 것도 유사점이다.

무엇보다도 '통일이 이뤄지면 정치·경제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이상주의가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통일 이후 예멘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롤 모델로 생각하는 독일과 또 다른 차원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 

현실보다 이상론에 치우쳐 성급하게 진행하는 통일은 대박이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반도의 남쪽마저 이념과 정파, 지역 등으로 분열돼 온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독일의 찬란한 성공담 못지않게 예멘의 처절한 실패담을 통일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