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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돋보기] '주권국가'의 중국식 해석 김태훈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바람아님 2015. 2. 22. 16:44

(출처-조선일보 2015.02.21  김태훈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김태훈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사진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주권국가였다. 너무도 명백해 언급하기조차 새삼스럽다. 

그런데 이달 초 한 신문에 난 기사가 이 분명한 사실의 이면(裏面)을 돌아볼 기회를 줬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은 주권국가"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어진 말이 자가당착이다.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기 바란다." 

그는 우리를 주권국가라면서 동시에 남의 나라 국방 문제에 간섭했다. 

'시진핑이 생각하는 한국의 주권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많은 사건이 시차를 두고 역사에서 반복됐다. 말[言]도 반복된다. 

시진핑의 발언은 120년 전 일본이 했던 "조선은 자주국가"라는 말의 동어반복이다. 

1895년 1월 7일, 고종(高宗)은 최초의 근대 헌법인 홍범14조를 반포하려고 종묘로 향하고 있었다. 

조선의 자주독립을 만천하에 알리고 고종 자신도 일개 왕에서 대군주 폐하로 격상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런데 행차는 오히려 초라했다. 

고종은 40명이 메는 대여(大輿·큰 가마) 대신 네 사람이 메는 소여(小輿)를 대령하라고 명했다. 

왜 그랬을까. '청국(淸國)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는 홍범14조의 1조가 문제였다. 

청의 보호막을 걷어차 버린 이날의 행차를 훗날 보복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날 고종은 "본심이 아니라 일본이 시켜서 한 것"이라는 신호를 종주국 청에 보내고자 작은 가마에 올랐다. 

고종이 택한 소여는 청·일 두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 왕이 벌인 괴로운 줄타기의 산물이었다.

청나라는 한반도에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가 되어 돌아왔다. 

돌아온 중국의 시진핑은 120년 전 일본이 했던 것처럼 우리의 주권을 언급했다. 

시진핑이 한 발언의 목적은 일본이 청과 전쟁까지 벌여가며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했던 '조선 

주권국가 만들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일본이 '조선 식민지화'를 위한 포석으로 조선을 

주권국가라고 했듯 중국도 '사드의 한국 배치 저지'라는 국가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그 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과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이달 초 우리 땅에 들어와 힘겨루기를 했다. 

지난 3일 방한한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은 "사드 배치를 우려한다"고 했고, 

8일 방한한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창완취안은 한민구 국방장관 앞에서 직설적으로 말했고, 블링큰은 삼계탕을 먹으며 상냥하게 말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행태가 우리 땅에서 전쟁을 벌이고 시모노세키 조약에다 자기들 멋대로 "조선은 독립국가"라고 썼던 

청·일의 전사(前史)와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고 충돌하는 두 나라가 고종의 소여 행차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리 없다. 

그 길은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