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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흑사병의 眞犯 밝힌 나이테

바람아님 2015. 3. 3. 11:21

(출처-조선일보 2015.03.03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14세기 유럽 인구 30% 앗아간 病… 도시 쥐가 病菌 옮겼다고 알려져
기후변화 담긴 나이테로 재조사… 아시아 쥐가 시발점으로 밝혀져
東西 교역로로 15년 주기 전파… 인류 교역사, 병균 이주사일지도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대학 시절 걸핏하면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북방계 유전자가 빚어낸 찢어진 눈에다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면 눈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이 겹친 
탓이었다. 친구들은 길을 갈 때는 눈에 힘을 좀 빼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세상을 원망했다.

유럽에 사는 시궁쥐도 그랬다. 
14세기 유럽에 흑사병(黑死病)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당장 시궁쥐가 원흉으로 지목됐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혐오스러운 모습이라고 해도 그렇지, 쥐들이 없는 곳에서도 흑사병이 퍼졌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7세기 만에 시궁쥐의 누명이 벗어졌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닐스 스텐세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4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에 
"유럽의 흑사병은 시궁쥐가 아니라 아시아에 사는 먼 친척인 모래쥐가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다. 
1340년대 흑사병으로 유럽에서 약 2500만명이 희생됐다.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0%에 이르는 숫자이다. 
이후에도 수시로 창궐해 마지막 17세기 런던 대유행까지 인류를 괴롭혔다.

14세기 흑사병은 몽골 칭기즈칸의 장남이 세운 킵차크한국 군대가 1347년 제노바의 무역기지를 공격하고 흑사병으로 죽은 
시신을 성안에 던지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생물학전(戰)의 시작이다. 하지만 대부분 과학자는 그보다는 교역로를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됐을 것으로 본다.

흑사병은 의학용어로는 '선(腺)페스트'이다. 쥐에게 붙어살던 벼룩이 사람을 물면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병원균이 사람의 림프절에 감염된다. 흑사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감염자의 시신(屍身)이 점점 검게 변색하기 때문이다. 
페스트균은 벼룩을 따라 이 동물 저 동물로 옮겨 다닌다. 오슬로대 연구진은 유럽에 퍼진 흑사병이 시궁쥐 때문이라면 
시궁쥐 개체 수 변화와 흑사병 발병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생각했다.

습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 쥐들도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온도가 섭씨 1도 높아지면 페스트균을 가진 쥐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이 상태에선 쥐에 깃들어 사는 벼룩이 다른 동물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 쥐가 죽어나가면 벼룩은 새로운 숙주(宿主)를 찾는다. 
이때 사람이 새로운 숙주가 되면 사람 사이로 흑사병이 들불처럼 번진다.

연구진은 의문의 실마리를 풀 열쇠를 나무의 나이테에서 찾았다. 나이테는 과거 기후변화를 기록한 타임캡슐이다. 
열대지방을 빼고는 어디나 1년에 하나씩 생긴다. 가뭄이 심했거나 혹독한 추위를 겪었으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나이테가 
촘촘해진다. 반대로 날씨가 좋았으면 나무가 잘 자라 나이테 간격이 넓어진다.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흑사병의 眞犯 밝힌 나이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나이테에 담긴 기후변화와 흑사병 발병 기록을 대조해도 유럽의 시궁쥐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대신 중앙아시아의 모래쥐가 새로운 용의자로 떠올랐다. 
중앙아시아 나무의 나이테가 갑자기 촘촘해지면 그로부터 15년 뒤 유럽에 새로운 흑사병이 번졌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그 과정을 대략 3단계로 추정했다.

1~2년 동안 중앙아시아에 극심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따뜻하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했다. 
모래쥐 개체 수도 급감했다. 그리고 모래쥐에게 붙어살던 벼룩이 낙타나 사람이라는 새로운 숙주로 갈아탔다. 
이후 10~12년 동안 벼룩이 낙타나 인간에게 실려 실크로드와 해상교역로를 따라 동(東)에서 서(西)로 이동했다. 
마지막 3년 동안 새로운 흑사병이 유럽의 항구에서부터 내륙으로까지 번진다. 
결국 중앙아시아의 모래쥐, 아시아와 유럽을 오간 사람이 흑사병의 매개체였다는 말이다.

물론 유럽에 사는 시궁쥐가 아시아에서 온 페스트균에 감염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럽 시궁쥐 집단에 페스트균이 
저장돼 있다가 수시로 인간에게 퍼졌다는 이른바 '저수지' 이론은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과거에도 흑사병의 원인이 유럽의 시궁쥐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인류학과의 제임스 우드 교수는 "14세기 영국의 흑사병이 그곳에 사는 쥐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흑사병이 번지려면 쥐들이 갑자기 떼죽음하고 쥐에게 붙어살던 벼룩이 일제히 사람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당시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당시 노르웨이에서도 흑사병이 창궐했는데 거기도 쥐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이 흑사병의 시발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2010년 아일랜드 코크 대학 연구진은 페스트균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이 중국에 사는 다람쥣과 
설치류인 마멋으로부터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멋에게 붙어사는 벼룩이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갔다는 말이다. 
또 그보다 조금 늦은 1409년에 동아프리카를 강타한 흑사병은 300척 대선단을 거느리고 그곳에 도착한 명나라 정허(鄭和) 
원정대가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교역사(交易史)는 실상 병원균의 이주사(移住史)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