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05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서랍을 열다가 구석에 삐죽 튀어나온 천 조각에 눈길이 가 닿았다.
여름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다. 여기저기 가위질이 나 있는 그 자투리는 동대문에서 몇 시간 헤매다
선택한 것으로 여름내 교복처럼 즐겨 입었던 옷의 원단이다.
감촉과 색상이 취향과 맞아 옷 만들고 남은 작은 조각들까지도 모아 챙겨둔 것이다.
눈에 띈 김에 천 조각들을 꺼내어 놓고 보다가 뭐라도 만들어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남아있는 형태를 최대한 살려 손 가는 대로 사람 모양 인형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종이에 본을 그리고,
천을 자르고, 천의 바깥 테두리를 따라 바느질을 했다. 그런 다음 솜을 넣어 여미고 손에 쥐어봤다.
신기하게도 천의 부드러운 느낌과 안에 넣은 솜 느낌이 함께 만나서 포근하고 따뜻한 안정감이 들었다.
머리로 생각한 걸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일은 간단하지만 신비롭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랍 구석에 있던 천 조각이 내 손에서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한 안정감을 주고 있으니.
그것도 머리카락 굵기에 지나지 않는 가느다란 바늘과 실이 엮여 만들어진 것임을 떠올려보면 바느질이 가진 위력은
그 어떤 마술보다 신비롭다.
- /공혜진 제공
머릿속이 무거워 어떤 것도 더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바늘과 실을 들고 바느질 심호흡을 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바늘을 천에 꽂고, 숨을 내쉬면서 실을 당겨 올린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과 바늘이 천을 뚫고 나와 다시 들어가는 것에 집중하면서 바느질을 한참 하다 보면
손 위에 내 숨들이 땀이 되어 나타난다. 게다가 언제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된다.
시간을 내서 동대문에 가야겠다. 정말 마음에 드는 원단 한 마를 사야겠다.
그리고 심란해질 때면 바느질 호흡을 해야겠다.
내 들숨과 날숨이 모여 만들어진 바늘땀 인형은 그 어떤 안정제보다 커다란 비상약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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