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07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풍수 공부는 3가지를 아울러야 한다.
'풍수서 읽기→현장답사→훌륭한 선생 찾아가기' 순이다.
조선 임금 가운데 풍수에 정통했던 정조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풍수서를 전심(專心)으로 읽어 그 종지(宗旨)를 이해한 뒤,
조상 능역을 참배하여 배운 것과 비교하고,
마지막으로 소문난 지사(地師)를 불러 의문들을 풀었다"고 그의 저술에서 밝히고 있다
(홍재전서 57권).
그가 남긴 풍수론(風水論)은 조선 풍수를 집대성한 것으로 지금까지 풍수교과서가
되고 있다. 그가 풍수에 정통할 수 있었던 것은 세손(世孫)으로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훌륭한 현장(왕릉) 답사가 가능했고, 언제든 당대 최고의 풍수사를 부를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필자의 풍수 공부 역시 이 세 가지를 아울렀지만 훌륭한 지사들을 만나는 데는 한계가
필자의 풍수 공부 역시 이 세 가지를 아울렀지만 훌륭한 지사들을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새로운 풍수 공부 방법 하나를 터득하였다.
바로 그림, 특히 그 가운데 산수화를 통해서였다. 그림을 통해 풍수를 공부한 것이다.
그림 속의 산이 반듯한가? 흙산(肉山)인가 돌산(石山)인가?
화폭 속의 물길은 하나인가 둘인가? 등등이 모두 풍수 공부에서 따지는 것이다.
어느 때부터는 그림(산수화)만 차분히 읽어도 풍수 공부는 절로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서양 격언처럼 그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일찍이 원(元)의 화가 황공망(黃公望)은 "그림 속에도 역시 풍수가 존재한다(畵亦有風水存焉)"고 하여
일찍이 원(元)의 화가 황공망(黃公望)은 "그림 속에도 역시 풍수가 존재한다(畵亦有風水存焉)"고 하여
그림과 풍수와의 상관관계를 주장하였다.
명(明)의 화가 당인(唐寅)은 그림에서 꺼려야 할 것 가운데
"산에 기맥이 없는 것(山無氣脈)"과 "물에 수원이 없는 것(水無源流)" 등을 꼽았다.
이 역시 풍수에서 꺼리는 바다.
특히 황공망은 "산수화를 그리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수구(水口)"라고 하였는데,
특히 황공망은 "산수화를 그리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수구(水口)"라고 하였는데,
풍수에서 길지를 찾는 핵심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풍수 고전 '의룡경(疑龍經)'은 길지를 찾는 방법으로 "먼저 수구(水口)를 보아라"고 할 정도였다.
수구(水口)란 여러 물길이 합쳐지는 지점을 말한다.
마을을 흐르던 개울물들이 합쳐져 더 큰물로 이어지는 동네 입구가 바로 수구(水口)에 해당한다.
물이 합쳐지지 않으면 좋은 수구(水口)가 못 되며, 그 땅은 길지가 될 수 없다.
서울은 수구문이란 별칭을 갖는 광희문과 동대문(흥인지문) 사이가 수구다.
'못된 바람 수구문으로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수구(水口)는 기(氣)가 드나드는 통로이기 때문에 늘 감시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림에서도 수구(水口) 묘사가 중시된다.
수구를 잘 묘사하여 기운이 생동하는 그림이 된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림 한 점을 통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이 그림 속에서 두 줄기 물이 마을 어귀에서 만남을 볼 수 있다. 좋은 수구다.
집 뒤의 산(주산)은 원만하면서도 후덕하다. 풍수에서 산은 인물을,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고 해석한다.
훌륭한 인물(山)과 풍성한 재물(水)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또 주산 뒤로 아스라이 산들이 이어지는데 풍수에서 이를 내룡(來龍)이라 부른다.
산들의 연속은 후손들이 끊임없이 이어짐으로 해석한다.
주산 좌우로 겹겹이 산들이 집을 감싸고 있는데 이를 청룡·백호라고 한다.
수구(水口) 밖으로 또 하나의 산(안산·案山)이 가로막아 기의 누설을 막아주고 있다. 좋은 땅이란 이와 같다.
덧붙여 이 그림의 절묘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수구(水口)에 그려진 오리 두 마리다.
수구(水口)에 오리가 없었더라면 기의 생동함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황공망이 말한 '수구(水口) 그리기의 어려움'을 오리 두 마리로 해결한 것이다.
<< 추가한 이미지들 >>
글에서 인용한 "화가 홍성담씨가 그린 명당도"
정선(鄭歚)-독백탄(獨栢灘)
필자의 풍수론과 비교해볼 수 있는 그림으로 -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이 한강 주변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33폭에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모습과 현재의 운길산, 수종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
이 그림에서 정선은 우하단에 암초 같은 바위를 배치함으로서 시선이 화면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막아주고
하단 중앙에는 고기잡이 배를 그려 넣어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족자도는 능내리 마을의 안산 역할하는 것으로 보인다.
겸재도 풍수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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