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09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올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임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느닷없이 보직 해임 통지가 날아왔다고 한다.
이유 중 하나가 술을 못 마셔 대외 협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여성 임원을 발탁했을 때 '말술'을 기대하고 뽑았던 걸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얼마든지 소통과 대외 관계를 잘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계속 근무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녀에게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만두지 말라고 조언했다. "술을 잘 마시는 후임자가 얼마나 일을 잘하나 한번 보자고요."
그녀는 본부 대기인 상태에서 지금까지 꿋꿋이 잘 버티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면 신문 기사 프로필에 필수 덕목처럼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주량이다. 두주불사형, 말술 등 표현도 다양하다.
고위직까지 오르려면 술이 필수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의 주량을 왜 알아야 할까?
국민은 주량보다 업무 능력에 관심이 있다.
처음 내가 공직을 시작할 무렵, 여성 선배들은 다 여장부 같았다. 일도 잘하고 술도 잘 마셔 대단하다는 평을 들었다.
절대 소수였던 여성들이 남성 중심 조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을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주 5일제로 주중 업무 강도가 세졌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전날 술을 먹고 덜 깬 상태에서는 업무 집중도와 효율이 생기기 어렵다.
내가 아는 CEO 한 분은 직원들에게 술을 마시려면 금요일에 마시라고 한단다.
술을 많이 마시면 그다음 날 대충대충 업무를 한다는 거다.
술보다는 능력으로 경쟁하라는 뜻이리라.
지금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모 수석은 여성들보다 술을 못한다는 소문이 있다.
한두 잔만 마시면 탁자 옆에서 쓰러져 푹 잔다.
평소 일이 많아 그동안 못 잔 잠까지 다 끌어다가 자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들 세계에선 술이 중요할 텐데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술이 약해도 고위직까지 올랐으니 정말 실력이 있나 보다 여긴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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