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시인 김삿갓
(
金笠
)
의 해학
詩
♣
본명은 김병연(1807~1863, 향년 56세) 조선 25대 철종 때의 방랑시인. 본은 안동.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삿갓에 죽장을 짚고 조선 팔도를 방랑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개탄, 조롱하는 시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뛰어난 시편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1. 금강산 입구의 한 절에서,
김삿갓의 거지 행색에 박대를 하는 그 절의 못된 늙은 중과, 같이 있던 선비를 놓고 읊은 시
僧首團團汗馬 (승수단단마랑) 둥글둥글한 중 놈의 머리는 땀 찬 말 OO 같고
儒頭尖尖坐拘腎 (유두첨첨좌구신) 뾰족뾰족한(관을 쓴 모습) 선비 놈 대가리는 앉은 개 OO 같아라.
2. 함경도 통천에서,
한 서당 훈장과 하룻밤 유숙을 걸어 놓고 읊은 시.
그는 일부러 김삿갓을 골탕 먹이려고 벽자인 찾을 멱(覓)자를 운자로 골라서 불렀단다.
許多韻字何呼覓 (허다운자하호멱) 허구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覓자를 부르는가?
훈장이 또다시 覓을 운자로 부르자
彼覓有難況此覓 (피멱유난황차멱) 아까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또한 멱자란 말인가?
함에도 훈장은 또 멱자를 부르는 것이었다
一夜宿寢縣於覓 (일야숙침현어멱) 하룻밤 묵는 일이 이 멱자에 달렸구나.
훈장이 부른 마지막 운자 역시 멱이었다.
山村訓長但知覓 (산촌훈장단지멱) 이 산골 훈장 놈은 멱자밖에 모르나보다.
산골훈장은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김삿갓의 詩才에 놀라 그를 깍듯이 대접해 보냈다고 합니다.
3. 강원도 원산 근처의 한 서당에서,
선생은 없고 못된 학동놈들이 김삿갓의 초라한 몰골을 보고는 비렁뱅이가 아니냐고 놀려대는 것이라.
이에 忿心이 일어 써 갈겨 놓고 떠났다는 시.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서당은 이에 내가 일찍이 알았는데
방안에는 잘난척 하는 놈들만 있네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생도는 모두 열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와 코빼기도 안 비치네
이는 아주 고약한 욕설로서 이를 발음대로 풀면 다음과 같이 된다.
서당은 내 좆이고 방안은 개 좆물 같다.
생도는 제미십이고 선생은 내 불알이다.
4. 훈장을 훈계하다 (訓戒訓長)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면서 김삿갓을 보자 또한 그를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여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5. 파격시 (破格詩)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합니다.
천장에 거미(무)집 / 화로에 겻(접)불 내 /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6. 함경도 북청에서-,
내노라 하고 살면서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정풍헌(鄭風憲)의 신축 瓦家 당호를 써준 이야기.
"貴樂堂 귀락당"
글자 뜻대로 새기면 ‘귀하고 즐거운 집’이란 뜻인데, 거꾸로 읽으면 ‘당락귀’가 되어 흔히 하는 말로 당나귀 정씨를 놀려 먹는 당호가 되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정풍헌은 노발대발했다가 글씨가 워낙 명필인데다 당호를 새로 쓰자면 돈푼께나 또 들여야 하는 게 아까워 그대로 걸어두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
7. 함경도 단천에서.
글 잘 한다고 소문 난 당시 20세의 노처녀 가련(可憐)과의 첫날 밤,
그 첫 방사(房事) 후에 썼다는 시 한 수.
毛深內闊 (모심내활) 必過他人 (필과타인)
털(陰毛) 아늑하고 속이 휑한 걸 보니 필시 누군가 지나간 자취로다.
* 이에 글 잘하는 그 가련이 그 자리에서 쓴 답시.
後園黃栗不蜂折 (후원황류는 불봉절하고)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는 불우장이라)
뒷동산 누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시냇가 수양버들은 비 없이도 절로 크지 않느뇨?
그러니까 "OO을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라, 이 양반아!" 아마 이런 말뜻이 될 듯----.
여기서 밤송이는 남성, 수양버들은 여성을 상징 함.
(아래의 글을 보면 가련이 기생의 딸이었음을 알수 있다.)
8. 기생 가련에게(可憐妓詩 가련기시 )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9. 이별 (離別)
가련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쓴 시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10. 스무나무 아래 (二十樹下 이십수하)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이 시를 풀이하면,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