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입학 58년 만에 학사모를 쓴 고복희 할머니가
졸업생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이화여대]
"학교를 떠난 뒤에도 늘 졸업하는 게 꿈이었어요.”
25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2012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고복희(78) 할머니는
단연 눈에 띄었다. 손녀들의 졸업식을 찾은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고씨는 학사모를 쓰고 하얀 리본을
목에 묶고 학부 졸업생석에 앉았다.
1955년 가정학과로 입학한 지 58년 만에 졸업장을 받아 든 고씨는 수업을 함께 들었던 손녀 나이
친구들과 연신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고 할머니는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도 이화여대의 여성적 분위기에 반해 이대를 택했다.
캠퍼스 생활도 잠시,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했다. 여자 나이 스물이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도 반대했던 집에서는 2학년 때부터 등록금 지원을 중단했고, 고씨는
집안에서 정해준 서울대 치의대를 갓 졸업한 레지던트 청년과 연을 맺었다.
이대의 금혼 학칙 탓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젠가 복학하리라.’ 할머니는 꿈을 접지 않았다. 2003년, 이대의 금혼 학칙이
폐지됐다. 1945년 이후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규칙이다. 하지만 막상 펜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즈음 남편이 세상을 뜬데다 부모로서의 할일을 마치는 게 우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고씨는 2남
3녀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2009년에야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처음 복학할 땐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고 고백했다. 손녀뻘 학생들이 혹시나 같이 공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까 걱정됐다고 한다. 가정학이란 전공도 사라지고 소비자학·소비자인간발달학·
영양학·의상학으로 바뀌어 있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용감하게 소비자인간발달학을 택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시절의 발달과업 등에 절로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거 치마 저고리
잡고라도 열심히 한 번 해 보자’고 마음먹은 고 할머니의 열정에 교수·학생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교수님들은 “선생님이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높아진다”며 격려했다.
학생들은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할머니에게 큰 글씨로 된 프린트물을 가져다줬다. 4년 내내 지각 한 번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고씨는 “친구들은 치매를 걱정할 나이에 열심히 공부했더니 절로 예방이
되더라”며 “복학을 허용해준 학교와 도와준 교수님,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