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노트북을 열며] 한국 경제, 황소 등에 올라타야 한다

바람아님 2015. 4. 22. 10:12

중앙일보 2015-4-22

 

원인이 나쁘다고 늘 결과가 나쁜 건 아니다. 주식시장에선 '나쁜 게 좋을 때'도 있다. 중국이 좋은 예다. 중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로 6년 만에 가장 낮았다. 경기둔화 징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용광로다. 상하이 증시는 6개월 새 80%나 올랐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이런저런 부양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실제로 중국은 기준금리를 낮추는 등 돈풀기에 나섰다.

 '나쁜 게 좋은 것'이란 프레임은 한국에도 적용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률을 3.4%에서 3.1%로 낮췄다. 경기상황을 안 좋게 본 것이다. 시장에선 한은이 지난 3월에 이어 2분기 중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내리고, 정부는 하반기에 추경을 편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가엔 호재다. 게다가 유럽 등지에서 넘쳐나는 돈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밀려오고 있다. 덕분에 코스피지수가 3년8개월 만에 2100을 뚫고 올라왔다. 지루한 등락을 반복해 '박스피'라 불렸던 코스피 아니었던가. 기세가 강해 쉽게 고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급기야 술기운에 힘입어 심야 택시에 '더블'을 외치듯 미국 모건스탠리는 하반기 최고치로 2700을 불렀다.

↑ 김준현</br>경제부문 기자

 중국처럼 경기와 주식시장이 따로 노는 것, 이거 건전하지 않다. 기초체력이 약한데 무리하게 뛰었다간 금방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가능하지 않나. 약해빠졌지만 매일 조금씩 열심히 뛰다 보니 어느새 훌륭한 러너가 돼 있는 그런 경우 말이다.

 마침 한껏 움츠렸던 부동산 시장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당장 지갑이 두둑해지진 않았지만 주식과 부동산에서 자산가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위기는 확 달라질 수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띄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경제심리를 회복하는 데 이게 특효약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 기회가 왔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달리는 황소(주가 상승세)에 올라타야 한다. 일단 분위기를 반전한 뒤 실물경제 회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지 않도록 돈줄을 죄기도 하고, 돈의 흐름이 막힌 곳은 뚫어줘야 한다. 분위기 좋을 때 구조개혁 등 아픈 곳도 도려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성완종 리스트로 만신창이가 된 정부에 국정 조정 능력을 기대할 수 있나. 정치라도 건강했으면 좋겠지만 공황 상태이긴 정치권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가 집권세력으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3류 행정, 4류 정치에서 우리 경제는 더 건강해졌다. 다시 한번 경제 스스로 힘을 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어쩌나. 우리 기업, 우리 경제가 20년 동안 덩치는 커졌지만 체력과 패기는 오히려 약해진 것을.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