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5.04.18
중국 경제 전문가 앤디 셰
G7(선진 7개국) 멤버들이 일본과 미국만을 남겨놓고 하나하나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참가를 선언하는 과정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금융 질서의 지각변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그러나 중국의 '경제 리더십'에서 눈을 돌려 중국 경제 그 자체를 볼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의 올 1분기 성장률은 7%. 금융 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의 디플레이션(불황 속의 물가 하락) 상황을 우려한다.
외국의 투자 자금 이탈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등 중이라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것일까.
위클리비즈는 세계 최고의 중국 경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앤디 셰(謝國忠·55) 박사를 만났다.
- ▲ 중국 경제 전문가 앤디 셰. / 박상훈 기자
중국 경제 낙관론이 만연할 때 그는 비관론을 펼쳐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 산하 연구소들이 그를 '미국의 앵무새(American Parrot)'라고 비난했다. 국적까지 문제 삼는 지적이 커질수록 그의 명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거침없는 말 때문에 이런저런 논란을 만들어내던 그는 2006년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 본부 수석 이코노미스트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상하이와 홍콩을 오가며 미국, 독일 다국적기업 등을 대상으로 중국 및 세계경제에 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른바 야인(野人)이 되고 나서 그의 목소리는 더 거침이 없어졌다.
그는 지난 8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15 미래금융포럼'에서 중국 경제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한 후 후줄근한 초록색 백팩을 걸쳐메고 인터뷰실로 들어왔다. 트레이드 마크인 동그란 검정 뿔테 안경과 지독한 홍콩식 영어는 변함없었다.
그는 여전히 비관론자였다.
셰 박사는 향후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긴 터널을 지날 걸로 예상했다.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으로 진단하고 있다. 중국 같은 신흥국이 디플레이션을 겪는다는 것인가.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쏟아부은 돈이 과잉투자로 이어졌다. 과잉 생산이 해소되는 데 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중국의 과잉 설비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 때 골머리를 앓았던 것보다도 크다.
현재 중국 경제의 40%에 해당하는 부분이 수축 중이다. 1~2월 전기 생산 증가율은 전년 대비 2%를 밑돌았다. 예전 이 수치는 10%를 넘었다. 주택, 자동차, 철강 등 주요 가격들이 하락하고 있다. 경기 전반이 우울하다(subdued). 그런데 아무도 생산 설비 감축을 결정하지 않는다. 작년 인구 1억 쓰촨성(四川省)의 시멘트 가격이 50% 급락했다. 과잉 설비를 줄이지 않으면 손해를 보면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 2015~2016년이 중국으로선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 디플레이션 상황이라면 해결 방법은 있나.
"생산을 줄여야 한다. 수익이 안 나 은행 빚에 의존해 생산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정부가 금융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파산에 의한 조정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정부는 악성 부채를 소각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공장 문을 닫고 은행이 손실을 부담케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악성 부채가 계속 남아 경제 회생을 가로막을 것이다. 자산 가격은 계속 내려갈 것이고 소득도 함께 낮아질 것이다. 가치 파괴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관료나 은행 고위 임원이 없고, 회생 능력이 없는 이른바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고만 있다.
이와 함께 수익을 찾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AIIB는 그런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엄청난 무역 흑자를 제로 금리 수준의 미 국채에 투자하는 것보다 수익률 6~7% 정도의 동남아시아 인프라에 쏟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셰 박사는 중국의 정치를 집요하게 지적했다. 그는 "그림자 금융(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금융)이 부동산에서 주식 투기로 옮아갔다"며 "가진 돈의 300%를 레버리지(이익을 늘리기 위해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하는 투자자도 봤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치가 인터넷 금융·은행 신탁상품 등을 통해 투기를 방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며 "반(反)부패 정책이 금융 영역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어떤 식으로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중국 정부는 모든 것을 '싸구려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체제가 비용을 잡아먹는 바람에 질 나쁜 상품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투자 중심 정책에서 힘이 세진 관료들이 총 투자액의 20% 정도를 가져갔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만약 정책의 변화 없이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것이다. 후진 정치체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셰 박사는 중국이 미국식 금융 위기를 겪을 확률은 낮을 걸로 봤다. 워낙 방대한 외환 보유액과,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 우려도 크다.
"중국엔 아파트 4000만채가 텅 비어 있다. 여기에 올 들어 1500만채가 새로 착공했다. 3억명이 살 집이 비어 있는 셈이다. 신도시를 지탱할 경제 체력이 부족해 유령도시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부동산 부실이 금융 위기로 갈 확률은 높지 않다. 금융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외환 보유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국제자본이 중국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작년 7000억~8000억달러가 중국을 빠져나갔다. 작년 무역 흑자가 4500억달러였으니 자본 이탈 규모가 컸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금융 위기가 벌써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무역 흑자가 전망대로 7000억달러를 달성하면 추가 자본 유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상쇄될 수 있을 걸로 본다. 외환 보유액은 3조7000억달러가 넘어 여전히 든든하다. 게다가 그간 중국은 자본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회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미국 금리 인상도 중국에 큰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금리가 5% 안팎으로 높기 때문에 제로 수준인 미국 금리가 올라가더라도 자본 유출의 유인이 되긴 힘들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회복이 세계경제 턴어라운드(경기의 상승 반전)와 직결되긴 힘들 것으로 봤다.
―중국이 턴어라운드할 때가 되면 세계경제도 좋아지는 건가.
"서구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노동력이 늘지 않고 중국 같은 투자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잠깐 반짝 좋아지는 것은 저(低)유가로 소비 여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끝나면 소비 증가도 사라질 것이다. 다음 세계경제의 물결은 중국의 소비다(Next wave is Chinese consumption). 세계에 남은 유일한 시나리오다. 다른 시나리오는 존재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선택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인위적인 부양책을 멈춰라. 한국은 성숙 경제에 돌입해 장기 성장률이 3% 안팎이 될 것이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양책을 쓰면 거품만 생길 뿐이다. 인구가 늘지 않는데 어떻게 부동산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을 보라. 일본의 공실률은 20%다. 부동산 시장이 영원히 사망한 것과 같다. 그런데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는 부동산을 부양하려 애쓴다. 공사 인부를 구하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이것은 비이성적이다.
한국은 경기 부양 대신 경쟁력 우위를 가진 방면에 집중해야 한다. 전자, 자동차 기술 개발에 집중하라. 스위스, 스웨덴 등 중간 규모 국가들이 특정 부문에 세계 경쟁력을 키운 것이 좋은 예다."
☞ 앤디 셰
1960년 중국 상하이에서 출생. 1983년 상하이 퉁지대(同濟大) 도로교량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토목공학으로 석사,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세계은행에 들어가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뒤 맥쿼리은행 싱가포르를 거쳐 1997년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입사했고, 2006년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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