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4-29
일흔의 노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기자의 만남 요청에 1시간 반이나 지하철을 타고 오후 8시에 기자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 찾아와 주었다. 우리는 후쿠오카의 서울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하카타역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에서 마주 앉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그것도 한일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시인의 시비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허문명 국제부장 |
우리의 대화는 지금 같은 한일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로 시작됐다. 그는 “안타깝지만 꽤 오래갈 것”이라 했다. 이유를 묻자 뜻밖에도 “일본 내부의 문제 때문”이란 답이 왔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깊은 불황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한국과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따라왔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뒤지고 경제대국 2위 자리도 중국에 내줬다. 우리가 겪은 충격과 좌절은 일본인이 아니면 모른다. 일본인들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과 대등해지는 상황은 있어서도 안 되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여기에 동일본 대지진까지 일어났다. 일본인이 겪은 자존감의 상실과 무력감은 일본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뻔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는 ‘불안과 좌절의 소산’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아베 정부의 과거사 왜곡이란 것도 사실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목적하에 시도되는 것 아닌가. 교과서를 왜곡해서라도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정권을 유지하려는 일그러진 정치구상 말이다.
기자는 그에게 “일본을 미워했지만 요즘엔 연민한다”고 했다. 거부감을 사지 않았을까 적이 걱정되었지만 그는 “요즘 한국인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가끔 듣는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대화 중에 ‘가해자’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시비를 세우려 하는 것도 속죄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혹시 당신은 일본을 미워하는가” 묻자 그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내 조국이 미울 수 있는가. 한국말에 ‘문둥이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나. 문제가 있다고 어머니를 바꿀 수 있나.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살인자에게도 양심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인들의 마음과 바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쟁을 치른 일본인들에게도 마음의 고통과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주는 괴로움이 있다…. 내가 윤동주에 빠진 것은 식민지 청년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시비 건립은 지지부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 볼 거다. 솔직히 힘에 부친다. 한국 국민이나 관련 단체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평화를 사랑하는 고결한 윤동주 정신 아래 뜻있는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동주를 떠올리면 분노와 불안이 가라앉고 평화로운 마음이 된다”는 그는 “억울하게 죽은 일본 땅에서 자신의 죽음이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도록 고인이 내게 소명을 주셨다”고도 했다.
내 나라의 시인을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까지 생각하는 일본인 학자 앞에서 부끄러움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꼈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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