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즐기는 자를 이길 순 없지

바람아님 2015. 4. 30. 07:03

(출처-조선일보 2015.04.30 임재홍·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임재홍·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사진
임재홍·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 대표
윈턴 마살리스 빅밴드가 공연하려고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재즈 트럼페터이자 뉴욕 '재즈 앳 링컨센터' 예술감독인 그는 현대 재즈의 총아다. 
공연 관계자가 전화해서, 우리 클럽을 방문하고 싶으니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이윽고 클럽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행은 입맛을 다시며 고민을 살짝 털어놓았다. 
연주를 하고 싶은데 공항에서 직접 오느라 악기 없이 빈손으로 왔다는 것이다. 
나는 악기들을 보여주며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레 얘기했다. 
악기를 본 그들은 깜짝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클럽에 있던 손님들이었다. 
세계적 빅밴드가 갑자기 나타나서 연주를 시작하니 횡재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흥이 오르자 연주는 새벽 3시가 넘도록 계속됐고 이들의 연주를 보며 황홀해했던 나는 급기야 
통사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직원들이 퇴근해야 하니 내일 다시 놀러 오라고 말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그들은 다음 날 점심에 미국 대사관저에서 있었던 환영 파티와 예술의 전당 공연을 끝내고 또다시 클럽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새벽 3시가 넘도록 가지 않고 연주를 즐기는 그들에게 언제쯤 끝낼 것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들은 "오전 8시 30분 출발 비행기여서 5시 30분에 공항으로 떠나면 되니까 조금 더 놀다 가면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 
잠을 자지 않고 바로 체크아웃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잠은 비행기 안에서 자면 된다"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이들이 이틀 동안 클럽에서 연주한 시간의 몸값을 계산하면 족히 1억원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쫓아낼 생각만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들은 정말 재즈를 좋아하는구나.' 오죽하면 돈도 받지 않는 일을 밤새도록 한단 말인가. 
그것도 공연을 막 끝내고 와서 말이다.

진정한 고수는 즐기는 자이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니 세계적 수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00년 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사실을 공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