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02 이한수 문화부 차장)
정치권에 몇 년 몸담았다가 지금은 생업에 종사하는 지인(知人) 두 사람을 최근 만났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현재 직원을 10여명 둔 사업체 대표인 A는
"어느 자리까지 갈 수 있는 능력과 그 자리에서 잘하는 능력은 별개인데 정치를 시작할 때 그걸 몰랐다"고
했다.
대선 캠프에 있었고 별정직 관료로 일한 B는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남의 것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탐욕이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절대 못 한다"고 했다.
둘은 정계 투신 실패의 변(辯)을 이렇게 대신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고 했다. B는
"내 손에 돈이 들어오지는 않아도 남의 돈(국민 세금) 수백억원을 내 결정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보통 매력이 아니다"면서
"중앙 부처 과장급만 돼도 지방에서 칙사 대접을 받는다"고 말했다.
정치학 개론서를 보면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이란 정의(定義)가 있는데 돈과 자리를 나눠줄 권한을
갖는 게 그렇게 큰 매력인 모양이다.
'정치자금 스캔들'이라 할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끼친 가장 큰 악영향은 정치인 개인이나 정권의 안위 문제가 아니라
정치 전반에 대한 냉소가 국민 사이에 확산되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얻은 야당의 페널티킥 찬스. 그런데 공이 럭비공"이라고 썼다.
여야 정치인 모두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TV 뉴스에서 '성완종 사건' 보도는 의외로 시청률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인이 돈 받은 게 어제오늘 일인가" 하는 냉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다.
탁월한 문학평론가였던 고(故) 김현은 인간을 두 유형으로 구분했다.
'나는 늘 잘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가형과 '나는 늘 잘못한다'고 여기는 예술가형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이 평론가도 정치인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反省)조차 없는 인간으로 보았다.
미학(美學)이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정치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좇는 '추학(醜學)'이라는 비난을
기자가 정치학 전공 대학원생이던 20여년 전부터 들었다.
하지만 정치란 본래 추하고 더러운 것이란 냉소가 퍼질 때 더 큰 문제가 벌어진다.
양극화와 청년 실업, 공무원연금 개혁 같은 난제(難題)를 해결하고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정치의 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굽은 것을 펴고 잘못을 바로잡는 힘은 결국 정치에서 나온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를 불신할 때 이를 끌고 갈 동력을 잃게 된다.
냉소가 깊어지면 뛰어난 인재들이 정치를 외면하고 무책임한 선동가들이 판을 친다.
권력욕이란 그 자체로 악(惡)은 아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권력 의지를 갖고 추진력 있게 일하는 정치인이라면 존경할 만하다.
다소 흠이 있더라도 능력 있는 정치인이 무능한 도덕주의자보다 국민 행복에 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표현이 형용모순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정치란 바로잡는 일[政者, 正也]'(논어)이라고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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