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05 박상미·번역가, 토마스 파크 대표)
아래층이 서점이고 길 건너편 2층도 서점이다.
2010년 서울에 돌아온 후 논현동에 살았는데, 동네를 아무리 걸어 다녀도 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동네 서점에 익숙했던 나는 책을 뒤적이며 서성일 곳이 없다는 사실에 발붙일 곳 없는 우주인처럼
황망해하곤 했다. 지금 사는 이 동네는 그에 비하면 기적에 가깝다.
아랫집과 건넛집이 서점일 뿐 아니라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가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오랜만에 내 신간이 나온 걸 기념하여 파티를 했다.
오랜만에 내 신간이 나온 걸 기념하여 파티를 했다.
옛날에 출간 기념회라는 걸 가 보니 고급스러운 케이터링 서비스와 수많은 악수와 연이은 명사들의 '한 말씀'이 있었다.
나는 그냥 파티라 부르고 싶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북 파티!
마침 갤러리에는 덩컨 한나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뉴욕 미술계에서도 알려진 독서광이다.
그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상상하고 열망한 장면들을 삽화처럼 그린다.
그의 그림들이 걸린 갤러리는 북 파티가 벌어질 실내로 완벽했다.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안경이었다.
모두가 안경을 낀 공간에 있어 보는 것, 눈이 핑핑 돌아가게 멋지지 않을까.
안경을 낀 친구들이 책을 한 권씩 사 들고 찾아와 주었고, 책을 디자인하는 친구는 그동안 디자인한 책들을 들고 왔고,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지인은 새로 번역한 소설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야말로 책 파티였다.
책 속에 길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정말로 멋지지 않은가.
어쩌면 가장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아닐까.
인류 최고의 식물성 발명품인 종이라는 재료가 멋질 뿐 아니라, 그 속엔 그림도 있고, 사려 깊게 디자인된 여백도 있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가슴 철렁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동네에 산다는, 이름을 모르는 한 시인이 밤늦게 파티에 들러 내 새 책을 내밀었다.
책장을 펼쳐 하얀 종이에 사각사각 그의 이름과 내 이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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