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06 김윤덕 논설위원 문화부 차장)
너무 얕봤다. 한 번 해봤다고 방심했다.
8년 만에 다시 하는 초등학교 1학년 엄마 노릇,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알림장에 적힌 숙제는 왜 그리 많은지. 받아쓰기 연습, 수학 익힘책 풀이, 하루 한 권 책 읽고 독서록 쓰기까지.
'요괴워치' 보겠다는 아이를 구슬려 숙제하다 보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젓가락으로 콩 줍는 연습도 시켜야 한다. 1분 안에 서른여섯 알 이상 옮겨야 1급이다.
첫 수학시험에서 75점 받아온 딸아이를 보며 8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손자를 직접 키우는 할머니 한 분은 담임에게 불려갔다.
숙제고 준비물이고 제대로 해오는 게 없으니 신경 좀 쓰라고 했단다. 그 얘길 들은 시어머니가 발끈했다.
"엄마 없는 애는 학교도 다니지 말라는 거냐?" 한국에서 아이 숙제는 엄마 숙제다.
인터넷 없이는 하기 힘들고, 만들기 하나에도 점수를 매기니 아이 혼자 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아이 성적이 엄마 성적인 탓이다.
▶스웨덴에서 1년간 살 때 '엄마 숙제'가 없어 행복했다. 준비물도 없었다.
아이들은 모든 걸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다.
목공실에서 나무를 잘라 제 손으로 만든 고래 장난감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던지.
숙제가 없는 건 엄마들을 배려해서다.
성인 여성 90% 이상이 경제활동을 하는 나라다.
종일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부담을 주어선 안 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그래서일까. 국제 아동 구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해마다 발표하는 '엄마 웰빙지수'에서
스웨덴을 비롯해 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1~5위를 휩쓸었다.
건강, 소득, 교육 기간, 공직 점유율에서 엄마 웰빙지수 30위인 한국을 큰 차이로 앞섰다.
엄마들 행복지수를 가른 건 일과 양육을 행복하게 병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면서 아이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니 북유럽 엄마들은 행복하다.
▶한국 엄마의 웰빙지수가 낮은 건 제도 탓만도 아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걸 못 보는 부모들 욕심도 불행의 씨앗이다.
스웨덴 유치원에서 아이들 기념촬영을 한 적이 있다. 공주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내고 간 건 우리 딸뿐이었다.
스웨덴 아이들은 평소 차림이었다. 머리에 그 흔한 왕관, 나비넥타이를 매고 온 아이는 없었다. 민망했다.
1등으로 돋보이는 아이가 아니라 남들과 어울려 조화롭게 자라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
행복, 웰빙의 비결은 거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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