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06 팀 알퍼·칼럼니스트)
12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보다 몇㎝가량 크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농구선수 뺨치게 큰 학생들을 보려면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올려다봐야 한다. 궁금하다.
도대체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이길래 아이들의 키가 갑자기 이렇게 자란 것인가.
작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한 간호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내 키가 169㎝라고 알려줬다.
작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한 간호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내 키가 169㎝라고 알려줬다.
항상 170㎝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틀림없이 영화 '에일리언' 속 괴물처럼 생긴, 빛나는 카메라가 달린 튜브가 목구멍과 위장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병원에선 이걸 '내시경'이라 부른다) 키가 1㎝ 정도 줄어든 것일 게다.
그 이후로 나는 "내시경 후유증으로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어서 169㎝가 된 것일 뿐,
진짜 내 키는 170㎝"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각인시키고 있다.
최근 내가 깨닫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최근 내가 깨닫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내 주변의 모든 한국 남자가 자신의 키가 170㎝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은 나보다 몇㎝ 작고, 몇몇은 몇 ㎜ 정도 큰 정도다.
양쪽 다 엉터리 줄자로 키를 쟀거나, 뭔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키를 잰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른바 '170㎝ 클럽'에 가입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예전엔 그런 클럽이 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내 말을 진지하게 믿어달라.
특히 171㎝ 이상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170㎝ 클럽'은 정말로 존재한다.
'170㎝ 클럽'은 자신의 키가 170㎝ 미만인 한국 남자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의 키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떤 이들은 키높이 신발이나 깔창에 의지해 '공포의 160㎝대'로 추락하는 걸 피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신발이나 깔창에 의지할 생각이 없다.
사무실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을 때마다 키높이 신발과 깔창이 선사해준 환상이 산산조각 나게 되는 것이 두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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