匠人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의‘재단사’.(1570년께, 캔버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갤러리)
의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는 주로 자치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특히 장인계층의 사회적 지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콧대 높은 귀족들도 베네치아의 금 세공인 이나 골동품상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 이런 계층적 변화는 예술에도 변화를 몰고왔다. 전통적으로 초상화는 정치적 혹은 종교적 지도자의 전유물이었는데 이것이 장인계층으로 확산된 것이다. 초상화의 대가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1520년께~1578)의 ‘재단사’ 역시 그런 시대적 배경 아래 제작됐다. 그러나 제작규범은 전통 귀족 초상화의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측면의 모습을 포착한 점, 인물을 삼각형 구도 속에 묘사한 점이 그렇다. 게다가 얼굴 표정은 왕후장상 못지않게 근엄하고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고객을 바라보는 표정은 거만하기까지 하다. 그의 손에 들린 가위는 마치 신성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성물처럼 보인다. 바야흐로 시민의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는 시각적 유산이다.
모로니는 저명인사의 초상을 수없이 그리면서 그들의 인간성을 매우 솔직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재단사의 초상에서도 두드러진다. 모로니는 지위가 어떻든 간에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초상화에서처럼, 이 그림 속 재단사는 화면 밖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관람자를 곧바로 그림으로 끌어들인다. 이 그림에서 재단사의 응시는 관람자를 홀리게 할 정도이다. 개인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 재단사의 잘 생긴 얼굴은 이 그림의 중심점을 형성한다. 그의 얼굴은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밝다. 이 빛은 재단사 얼굴의 형태를 만들고, 관람자와 그의 시선을 연결 해주는 눈을 스치고 지나간다. 재단사의 표정은 과묵하지만 날카로움이 있어 매력적이다. 크림색과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는 재단사는 부드러운 회색으로 된 차분한 배경으로 인해 두드러져 보인다. 모로니 그림에서의 의상은 전형적으로 실감나지만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재단사의 윗옷의 경우에는 몇 번의 붓질로 표현됐는데, 이는 모로니 후기작의 특성이 됐다. 재단사의 머리가 이 그림을 압도하긴 하지만, 화가는 재단사의 벨트, 커푸스, 가위 날 위에 반짝이는 하이라이트를 사용해 그림에 균형을 줬다. 자연스러운 기품이 흐르는 자세와 몰두하고 있는 얼굴은 그에게 상당한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 같은 절제된 평안함과 고상함은 이어지는 세기에 베르메르와 데 호흐 같은 위대한 네덜란드 장르화가들의 그림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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