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淸代) 화가 왕소(王素)의 <설야방대도(雪夜訪戴圖)> 선면(扇面)
山中雪夜(산속 눈 내리는 밤)
李齊賢(이제현)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종이 이불에 한기 돌고, 불등은 어두운데
沙彌一夜不鳴鍾(사미일야부명종)사미승은 한 밤 내내 종을 울리지 않았다.
應嗔宿客開門早(응진숙객개문조)응당 자던 손님 일찍 나간 것을 꾸짖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요간암전설압송)암자 앞 눈에 눌린 소나무 보려했을 뿐이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오늘은 대설이다. 강원도지역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자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의 눈에 대한 유명한 고사가 생각난다. 휘지가 산음(山陰)에 거주할 때,
밤에 눈이 내리자 갑자기 친구인 대규(戴逵 ; 동진의 문인화가)가 생각났다.
당시 대규(戴逵)는 섬계(剡溪)땅에 살고 있어서, 한밤중에 작은 배를 타고 밤새도록 갔다가,
문전에 이르기 직전에 배를 돌려 돌아왔다. 사람들이 왜 돌아왔느냐고 묻자,
“흥이 일어나 갔다가, 흥이 다하자 돌아온 것일뿐(乘興而行,興盡而反),
반드시 안도(安道 ; 대규(戴逵)의 字)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이 고사에 따라 수많은 화가들이 눈오는 밤 친구를 찾아간 휘지의 감흥을 그림으로 그렸다.
눈이 내리면 친구가 생각나고 무작정 벗을 찾아나선 왕휘지처럼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을 보면서 감흥을 풀어낸 익재 또한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는 눈 내리는 날 감흥을 주고 받을 친구가 있는가.
감흥을 갈무리 할 영혼이 있는가...
이 시는 익재선생이 눈 내리는 산사(山寺) 암자에서 밤을 보내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
얇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으나 추위가 엄습해와 잠이 들었다 다시 깨었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불등(佛燈)조차 희미하다.
선 잠속에서 곧 종소리 들려오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사미승조차 잠들었는지 밤이 다하도록 끝내 종은 울리지 않았다.
밤새 내린 눈이 궁금하여 새벽 일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니
소나무 위엔 하얗게 눈이 내려앉아 있고, 그 무게에 소나무 가지가 축 늘어져 있다.
이 시는 한 자의 허비나 이완(弛緩)이 없이 마치 구슬을 꿰듯 삼엄하게 잘 짜여져 있다.
고려의 시인 최해(崔瀣)는 이 시를 두고
“익재 반생의 시법(詩法)이 이 시에서 다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李齊賢이제현(1287 충렬왕 13~1367 공민왕16)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 ․ 역옹(櫟翁).
1301년 성균시에 장원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했다. 28세 때 원나라 연경에 설치된
만권당(萬卷堂)에서 조맹부 등 당시의 석학들과 고전을 연구하고 학문을 토론했다.
고려와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해결하는 등 활약하였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조맹부의 송설체를 도입해 유행시켰다.
다섯 왕을 도와 벼슬하는 동안 네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올라
그릇된 정사를 바로잡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저서에는 익재집(益齋集), 역옹패설(櫟翁稗說)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