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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예술가의 삶'

바람아님 2015. 5. 28. 09:35

(출처-조선일보 2015.05.28 김태익 논설위원)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 있게 하는 것.' 공연예술 중심 대학로를 걷다 보면 흔히 만나는 문구(文句)다. 
그러나 여기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삶은 그다지 흥미로워 보이지 않는다. 
대학로 소극장은 지난 몇 년 서른 개가 줄었다. 비싼 임차료 탓이다. 
연극인 한 달 평균 수입은 36만원. 
대학로엔 입에 풀칠하느라 편의점·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밤에 대리운전 하는 배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최고의 배우와 연출가를 꿈꾸며 대학 문을 나서는 젊은이가 한 해 120개 대학 3000명을 넘는다. 
문학·미술·음악·영화·무용…, 예술 분야 한 해 졸업생을 모두 합치면 9만명이나 된다. 
이들의 미래가 2012년 '문화예술인 실태 조사'에 나와 있다. 
10개 분야 2000명에게 물었더니 월수입 100만원 이하가 66.5%, 50만원 이하도 25%였다.


	[만물상] '예술가의 삶'
▶젊은 예술가들을 괴롭히는 건 당장의 배고픔만이 아니다. 
기성 예술계의 벽은 높고 자신의 앞날은 깜깜하기만 하다. 
무용만 해도 한 해 58개 학교가 1500명을 배출하는데 번듯한 무용단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영화판에선 바닥부터 기어 몇 계단 올라가도 메가폰 잡아 본다는 보장이 없다. 
며칠씩 밤새운 품삯을 떼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도 발표할 지면(紙面)이나 전시장 못 잡아 썩히는 시인·화가도 숱하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세계적인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엊그제 뉴욕대(NYU) 예술대 졸업식 축사에서 '예술가의 숙명'을 얘기했다. 
그는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꿈 많은 졸업생을 향해 "여러분 엿 됐습니다(You're fucked)"라고 비속어를 날렸다. 
졸업생들에게 배우·가수·감독으로 성장하기까지 순탄치 않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우치는 반어법이다.

드 니로는 예술가의 삶을 "평생 거절당하는 인생(a lifetime of rejection)"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러분은 작은 배역을 따내기 위한 오디션이나 작은 일자리를 잡기 위한 면접 같은 데서 
수많은 '거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거절당했던 경험도 말했다. 
그는 배역 하나 맡아 보려고 감독, 제작자, 감독 아내까지 일곱 명 앞에서 대본을 읽었다. 
그러나 배역은 다른 배우에게 돌아갔다. 드 니로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배우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듣다 보니 그의 욕설은 예술 꿈나무들을 향한 더없는 격려다. 
이 격려를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우리 젊은 예술가들에게 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