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29 임병희 목수·'목수의 인문학' 저자)
- 임병희 목수·'목수의 인문학' 저자
공방에 한 아이의 아빠가 찾아왔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위해 직접 책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공방에서 수업은 들었지만 그는 아직 책상처럼 큰 가구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직접 만들어 준 책상과 그 책상을 쓸 아이를 생각하니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어졌다.
비록 내 책상은 아니었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 아빠와 나는 길이와 너비, 결합 방식에 대해 상의를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아빠 힘으로 책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 초보였기에 한쪽에 홈을 내고 그 홈에 다른 나무를 끼워 맞추는 방법보다는
쉽게 나사못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도면을 그리고 나무를 자르고 책상을 만들어 갔다. 어느덧 책상은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는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사포질을 했고 마지막엔 정성 들여 오일을 발랐다. 그렇게 책상은 완성되었다.
나는 곧 책상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아빠가 다시 공방에 찾아왔다.
그리고 책상에서 아이와 함께했던 일을 쏟아냈다.
아이는 이 책상은 자신과 아빠만이 쓸 수 있는 책상이며 공부는 무조건 이 책상에서만 하겠다고 했단다.
그 말이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가구를 완성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완성되는 순간부터 가구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마치 아빠와 아이가 세월을 두고 책상에 대한 추억을 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것이 완성된 책상의 또 다른 역사가 될 터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일 하나는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은 무수히 많은 일이 얽히고 쌓여 만들어진다.
마치 가구의 완성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를 완성하지 않으면 또 다른 하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 일이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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