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4
문자(‘Bless you!’ 또는 ‘God, bless you!’) 그대로 ‘신의 가호를!’이라는 덕담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재채기나 기침이 페스트 같은 병에 걸렸음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오래전에 그런 인사가 시작됐다(다른 주장도 있습니다)고 하나 세상이 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뜻으로 던지는 말로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은 재채기를 안 하느냐고요. 거의 안 합니다. 런던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유심히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 본 사람은 재채기가 나오려 할 때 손으로 코를 쥐어막고 고개를 숙여 재채기를 ‘삼키는’ 이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순간 ‘큭’ 하고 공기와 목 안쪽 살의 마찰음이 나옵니다.
유럽에서 근무할 때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독일 등에서도 이런 광경을 자주 봤습니다. 그 뒤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해보곤 했는데 재채기를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실패의 경험도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의 훈련이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근면·성실로 기적을 일군 나라의 국민답게 ‘가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의 정신으로 우리는 학교와 직장에 갑니다. 기성세대들은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타야 한다’를 정언명제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당신이 독감(인플루엔자)에 걸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선생님이 아이에게 “집에 가도 좋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내심의 뜻은 ‘가도 좋다’가 아니라 ‘가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교실 창문을 여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돈독한 동포애 때문인지, 숱한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온 민족의 이력 때문인지 우리는 바이러스 전파 문제에 꽤 관대합니다. 나의 것이 타인에게 가는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의사가 말려도 해외 출장을 가고, 외국의 여행지에서 격리 수용을 거부하다 강제로 끌려갑니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몰래 골프 치러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태어나 중동에는 가본 적도 없는 동물원 낙타들을 격리시키고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고 법석을 떱니다. 저는 낙타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바이러스가 무섭습니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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