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태평로] 시진핑의 논어 誤讀에서 일본 문제를 본다

바람아님 2015. 5. 29. 10:15

(출처-조선일보 2015.05.29 이한우 문화부장)


	이한우 문화부장 사진
이한우 문화부장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논어(論語)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어를 인용했지만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찾은 일본 대표단 3000명을 

환영하며 또 논어의 구절을 여럿 인용했다. 

"벗이 있어 먼 곳으로 갔다가 바야흐로 돌아오니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구절이 있고 

"덕(德)으로 원한을 갚는다[以德報怨]"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공자의 말이 아니다. 

논어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이 말의 맥락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면박을 준다. 

"그러면 덕은 무엇으로써 갚을 텐가? 원한은 곧음[直]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아야 한다." 

우리가 논어를 인용하는 것은 공자의 진정한 뜻을 인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시진핑의 이 인용은 초점에서 벗어나 있다. 시진핑은 중일전쟁 후에 중국이 수천명의 일본인 전쟁고아를 돌봤고 일본인의 귀국을 도왔다는 점을 들어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했다는데 정확한 사례 인용이라고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공자가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곧음으로 갚으라고 했다. 

주희는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원한이 있는 자에게는 사랑하고 미워함[愛憎]과 취하고 버림[取捨]을 한결같이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이 하는 것이 

곧음[直]이다'라고 했다. 사감(私感)을 버리고 공평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공자의 '곧음'은 시진핑의 오독(誤讀)과는 별개로 지금 뒤엉켜 있는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세기 전반기의 한·일 관계사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원한을 갖기에 충분할 만큼 악랄하고 잔인했으며 

비인간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이를 원한으로 되갚을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일본을 경계하되 그들에게 악감정까지 갖는 것은 지나치다. 

물론 지금 일본의 혐한(嫌韓) 짓거리나 극우파들의 행패를 보고 있노라면 끓어오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그 같은 짓거리나 행패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고, 그것이 바로 일종의 곧음이다.

둘째, 사람이나 나라나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정확히 볼 줄 알고 동시에 자신의 단점도 직시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본의 긍정적 기여를 인정하면 당장 벌떼처럼 달려드는 몰(沒)지성의 우리 학계 풍토에서 배우고 자라는 

젊은 세대들이 곧음의 정신을 간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가 배워야 할 장점들이 많은 나라다.

셋째, 우리나라의 수준을 일본 못지않게, 나아가 일본을 앞서게 만들기 위해 멀리 보고서 꿋꿋이 나아가는 것이 곧음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의 정치나 경제 모두 일본과 선의의 경쟁이라는 중요한 틀을 놓아버린 느낌이다. 

지금은 누가 봐도 일본과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는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