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2015-6-13
“기자가 지사(志士) 정신이 사라지고 ‘생계형’으로 전락했다”고 최근 한 정치인이 사석에서 비판했다. 1970년대 유신독재가 엄혹할 때도 정론 직필을 위해 기자들이 저항해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졌는데 요즘은 정부나 자본의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계형’은 등 따뜻하고 배가 불러 고민하지 않는 순치된 인간형을 말한다. 너무 오랜만에 들은 ‘지사형 기자’론에 어리바리하다가 반박할 타이밍을 놓쳤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지사형 기자’로 활약했던 언론 초기의 역사성이 한국 언론의 정체성을 형성한 탓에 전문성이 부족하고 어설픈 계몽주의적 기사나 쓴다며 지난 10여년 귀가 따갑게 비판하더니만, 왜 느닷없이 지사형 기사를 요구하나.
외환위기 이후 언론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추락해 ‘생계형 기자’라고 칭하고 자조한다. 지난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별명까지 생겨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지사형 기자질을 하겠나. 이런 한탄에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도 생계형인데 요즘 생계형 아닌 직종이 어디 있나”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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