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5-6-12
일단 박 대통령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정치는 말의 세계이고, 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는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는 말을 무척 아끼는 데다 가끔씩 하는 말조차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말은 문장 자체가 정연하지 않은 편이다. 또 메시지가 모호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사태를 해결한다거나 사람들을 설득하고 행동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라는 자기 인식에서 출발하는 자기 얘기가 없는 편이고, 국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대를 갖고 정부의 말을 듣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많은 유언비어와 SNS상의 사실과 다른 내용들에 대해서도 단단히 대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힘든 병마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가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우리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이 상황을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한 말 중 일부다. “단단히 대응해 주시기 바란다” “의지가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등 하나마나한 얘기들이고 공허한 지침들이다.
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통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고 싶은 것인지, 임기 중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과제는 무엇인지 등은 임기 반이 지나간 지금까지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가 박근혜정부의 목표인가. 아니면 통일인가. 혹시 복지국가인가.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는. 박 대통령의 생각은 그의 말처럼 모호하고 미스터리하다.
박 대통령의 사생활이나 행적 역시 은밀하다. 공식적 일정을 통제된 범위 안에서만 공개할 뿐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그 유명한 ‘7시간 공백’ 외에도 많은 것들이 비밀에 싸여 있다.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 청와대 바깥소식은 가끔 듣는지, 주변 인물은 누구인지, 휴일엔 뭘 하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국민들은 아는 게 없다. 그 이유가 대통령이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밀스러운 통치 스타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말과 메시지, 배경 정보의 부족. 이런 상황에서 소문과 오해, 유언비어 등이 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지게 마련이고,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교류하면서 답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박근혜 정치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요즘엔 화법이나 언어 분석, 심리 분석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박근혜 번역기’까지 등장했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이 페이지는 박 대통령의 말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번역해서 제공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조롱의 성격이 강하지만 박근혜 정치가 번역이 필요한 지경까지 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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